“85살 원로 화가도 새로운 도전 멈추지 않습니다”

김용희 기자 2024. 8. 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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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20~​26일 ‘돌부처 드로잉전’ 여는 김준호 화백
김준호 작가가 최근 작업을 마무리한 전남 화순 운주사 돌부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김준호 작가 제공

“연필로도 그려보고 콩테(흑연으로 만든 미술도구)도 써봤는데 먹이 제일 낫더라고.”

12일 만난 김준호(85) 화백은 최근 작업한 운주사 돌부처 먹그림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김 화백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운주사 먹그림 30점과 소나무 스케치 20여점으로 20일부터 26일까지 광주 갤러리 관선재에서 개인전 ‘김준호 돌부처 드로잉전’을 열 예정이다.

그동안 알록달록한 색채로 남도 풍광을 담은 사실주의 서양화를 선보였던 김 화백은 60년 예술인생에서 처음으로 먹그림에 도전했다.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발로 걸으며
알록달록 서양화에 한반도 풍광 담다
운주사 돌부처의 소박함 표현 위해
60년 만에 먹그림·돼지털붓 첫 도전

“평소 스트레스를 풀러 화순 운주사를 자주 찾곤 했는데 어느 날 돌부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하던 대로 스케치북을 가지고 돌부처 앞에 앉아 연필이랑 콩테로 밑그림을 그리는데 돌부처가 가진 편안함과 소박함이 안 살더라고. 사람들도 계속 지나다녀 집중이 안되니까 ‘안 되겠다’ 싶어 돌부처 사진을 찍어 작업실에서 어떻게 그릴까 고민했어요.”

김 화백은 종이와 연필의 궁합이 맞아야 온전한 모습을 묘사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필로는 생각했던 작품이 나오지 않자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먹에 눈길이 갔다.

김 화백은 “화선지는 번지니까 평소 쓰는 캔버스를 이용했고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돼지털붓을 써봤다”며 “서양화를 그리는 것처럼 수십번 덧칠하면서 명암을 표현하니 머릿속 질감이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배경은 배제한 채 돌부처 모습만 캔버스에 담았다. 합장을 한 부처부터 무릎을 세워 앉은 소박한 자세의 부처, 얼굴만 남아 있는 부처 등 김 화백이 운주사 곳곳을 걸으며 직접 눈으로 본 것들이다. 모두 인자한 표정이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바람에 의해 깎이고 갈라진 부분도 김 화백 특유의 사실적 묘사로 표현했다.

김준호 작가가 먹으로 그린 전남 화순군 운주사 돌부처를. 김준호 작가 제공

김 화백은 이번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운주사 사천왕문 오른쪽 언덕에 서 있는 5층석탑, 일명 ‘거지탑’이라고 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 이 탑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못생겼다는 의미로 민간에서 거지탑, 동냥치탑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평생 순수 미술을 추구했던 김 화백의 인생과 닮아 있는 탑이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은 김 화백은 건강비법에 대해 ‘몰두’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미술학원 운영하던 40대에 대장암
‘하고 싶은 일 하며 여생 보내자’ 결심
전업작가 도전으로 암 투병 이겨내

1962년 광주사범대학교(현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한 김 화백은 광주·전남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1980년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교단을 나와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전국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1986년 대장암이 찾아왔다. 학원 운영을 접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생각에 전업작가 길을 선택한 그는 한라산을 두번 종주하고 5년간 무등산을 오르며 그림을 그린 덕에 암 투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김 화백은 현장 답사를 소홀히 하는 일부 작가들에게 “현장을 가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사진만 보고 그림을 그리면 카메라 렌즈의 왜곡 때문에 자연이 가진 원래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1998년 금강산이 개방됐을 때 금강산 그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요. 금강산 탐방 전 월출산에 미리 들러 연습도 했어요. 한번은 무등산 서석대 진달래를 그리려고 산을 올랐는데 꽃의 상태나 날씨 등이 생각과 맞지 않아 4년간 다시 찾았던 적이 있어요.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에 담기지 않은 배경이나 분위기, 자연의 색채를 알고 있어야 사실적 묘사가 가능해요.”

국토 최남단 마라도부터 최북단 백두산까지 발로 걸었던 김 화백은 한국의 정서를 구상미술로 캔버스에 옮기는 게 평생의 목표다. 그동안 모과나 동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면 이번 운주사 돌부처처럼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겠다고 했다.

“100살이 되도 걸을 수 있고 붓을 들 수만 있다면 계속 그림을 그려야죠. 저보다도 연세가 지긋하지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선배들과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겠습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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