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짜리 빌딩 거래에 ‘계약금 0원’…강남 한복판 건물 명의변경도 수차례, 대체 무슨 일?
세 차례의 계약 모두 계약금 0원…“명의신탁 의심”
시선RDI 측 “불법 등기 신청으로 건물 채갔다” 주장
부동산 업계에서는 명의신탁이 불법인 만큼, “매우 이례적”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신논현역에서 도보 2분거리, 교보타워사거리 인근 15층 규모 빌딩인 에이프로스퀘어(옛 바로세움3차)가 4차례에 걸쳐 명의가 바뀐 가운데, 3번의 계약 모두 계약금 0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이 빌딩은 빌딩 시행사인 시선RDI가 소유권을 두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에이프로스퀘어는 지난 2011년 완공 이후 시행사에서 시공사의 특수목적법인(SPC)과 사모펀드 등으로 소유주가 바뀌어 왔다. 이 과정에서 빌딩 가치는 초반 1600억원대에서 현 3000억원대까지 뛰었다.
시공사인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은 시행사인 시선RDI측의 대출채권을 양수받은 후 수탁사인 한국자산신탁에 공매처분을 요청했다.
당시 두산중공업의 SPC인 더케이가 2013년 12월 1680억원에 한국증권금융에 이 빌딩을 넘겼다. 등기상 소유주인 한국증권금융은 사실상 수탁사로,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9호가 소유주가 됐다.
더케이에서 한국증권금융으로 소유권이 이전될 때의 매매계약서를 보면, 계약금 168억원이 실납입액 없이 1순위 우선수익자의 채권과 선 상계(정산)하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갈음한다고 돼 있다.
당시 매매가는 1680억원으로 1순위 우선수익자는 더케이였다. 실제 계약금이 오간 적이 없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반복된다. 2019년 3월 매매대금 2040억원에 하나은행을 수탁사로 한 마스턴 49호가, 2022년 4월 3087억8100만원에 우리은행을 수탁사로 한 JR 32호가 연이어 이 빌딩을 매수하면서 소유주가 두 번 더 바뀌는데, 이 모든 거래에서 계약금은 0원이었다.
일반적으로 매매대금의 10%가 계약금으로 잡힌다. 그런데 이 빌딩의 경우에는 계약금을 설정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규모가 큰 빌딩의 모든 거래에서 계약금은 0원이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계약금이 없으면 보증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보증금마저 없다면 명의신탁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명의신탁이란 부동산 등 재산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3자 명의로 등기부에 등재한 뒤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실 등기상 소유주가 금융사일 뿐 실소유주인 펀드는 각각 마스턴자산운용과 JR투자운용이 운용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대리업무’를 본 수탁사인 셈.
이 같은 이유로 시선RDI 측은 각 펀드의 보통주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은행 측이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제출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게 은행 측 입장이다. JR투자운용은 일반 투자자 명단만 제출해 보통주 소유자를 알 수 없게 됐다.
의문은 더 있다. 시행사인 시선RDI도 모른 채 건물의 출생 신고라 할 수 있는 소유권보존등기가 이뤄지고 대출 채권마저 양도됐다는 것.
김대근 시선RDI 대표는 “시행사인 시선RDI 모르게 소유권보존등기가 이뤄지고,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이 채무를 갚은 뒤 바로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채권을 두산중공업에 넘겼다”면서 “불법 등기 신청과 채무 이전으로 건물을 채간 부당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시선RDI는 민사소송을 시작으로 14년 가까이 법적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시선RDI 측은 소유권보존등기가 적법하게 처리되지 않아 그 이후 이뤄진 이전등기 역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 소유권자이자 시행사인 시선RDI에 에이프로스퀘어 소유권이 이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부는 오는 29일 에이프로스퀘어 원 소유주였던 시선RDI가 현 소유주인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다.
이와 관련 우리은행 측은 “수탁사로서 등기부등본상에 소유자로 등록돼있을 뿐 운용 등에 관여하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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