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안부’는 전쟁에 동원된 군수물자였다”

이유진 기자 2024. 8. 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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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가장 뜨거운 연구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2021년 3월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벌어진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규탄하는 행위극. 1990년대 이후 계속되는 ‘수요집회’ 또한 관성적인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가장 뜨거운 연구서가 마침내 출간됐다. 1991년 김학순의 증언 이후 한국에서 이 책이 나오는 데 33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위안부 담론과 운동의 일방성을 비판하고 ‘자발이냐 강제냐’ ‘공창이냐 아니냐’ 등 공방을 거듭하며 민족주의적 논리가 재차 강화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패러다임 변화를 제시한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김은실 엮음, 권은선 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위안부’ 문제에서 탈식민 페미니즘 관점 연구가 부족했다는 데 공감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2014년부터 10년 동안 논문을 쓰고 함께 토론하며 엮은 책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관점’을 이동했다는 점이다. 책의 기획자이자 엮은이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출발이 김학순 증언이 나온 1991년이 아니라 1946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이라고 보았다. ‘위안부’를 전쟁범죄에서 제외한 연합군에도 피해와 식민 이후 트라우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은실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위안부’가 일본의 전쟁 수행 과정에서 동원된 군수물자이자 성 노예였다고 본다. ‘자발 아니면 강제’라는 틀을 뛰어넘어 여성의 성을 군수품으로 사용한 제국주의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위안부’ 논의에서는 ‘민족’이 부상할 때마다 집단 성폭력이란 문제의 복잡성, 성 불평등의 맥락이 사라졌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나 담론이 30년 넘도록 일본의 ‘위안부’를 배제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위안부’ 운동을 주도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한국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를 따로 범주화했다. 한국 사회 전반에 한국인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이고, 일본인 ‘위안부’는 자발적 행위자라는 이분법이 팽배했다. 이 시각은 ‘순수한 피해자’ 이미지를 만들었고, 틈새를 비집고 ‘망언’이 이어졌으며, 그럴 때마다 당사자와 운동은 곤경을 겪어야만 했다.

연구자들은 국적 불문, 여성을 군수품으로 동원한 전시 성폭력을 강조하는 여성주의적 개입이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창=위안부’라는 주장이 나오고 이를 반박하는 공방전을 벌일 때마다 ‘위안부’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라는 상이 떠올랐고 “성폭력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여성의 자격”은 따로 있다는 논리가 강화됐다.(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한국에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무시됐지만 국제 학계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2021년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계약’(‘국제법경제리뷰’ 게재)도 낱낱이 반박한다.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여성들이 ‘위안소’에 ‘알고 갔’기 때문에 자발적 계약이며 강제 동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망언의 본질주의적 속성”을 갖는다고 비판한다. 피해가 ‘자격’에서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일 극우집단은 ‘위안부’ 부정론이라는 인종주의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공유 지식으로 연결돼 동성사회적 ‘상상된 공동체’의 멤버십을 획득했다고 평가한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목소리’와 ‘듣기’의 윤리를 강조했다. 그는 1975년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배봉기의 증언이 2010년대 이후 비로소 ‘최초’로 인정되기 시작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남한에 청중이 없었던 배봉기의 죽음과 민단과 조총련 간의 경쟁적 ‘대신 말하기’를 분석했다. ‘대신 말하기’는 배봉기란 존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무시했다. ‘위안부’ 여성을 ‘단일한 희생자’ 또는 ‘적극적 행위자’라는 양극단으로 묘사한 다른 여성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자이니치’로서 한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위안부’ 연구를 계속해온 야마시타 영애 분쿄대학 문학부 교수의 글은 한일 양국을 오가며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고민했던 필자 자신과 ‘위안부’ 정체성에 대한 아름답고 날카로운 정치적 에세이로서 가치가 높다. 일본 시민사회가 조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을 거부한 정대협과 이에 대항해 벌어진 한국 내 모금과 배분의 기록은 뼈아프다. 정대협 활동가 출신으로서 야마시타 교수는 이 운동이 “페미니즘이 파고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민족 담론에만 매몰돼 있었다”고 본다. 2020년 5월 이용수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벌어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 이후에도 이용수의 문제 제기, 윤미향의 국회 진출을 두고 어떤 논의와 반성이 있었는지 되묻는다. “‘위안부’ 운동의 ‘중심’이었던 정대협은 의도하지는 않았다 해도 생존자들을 ‘피해자’라는 틀에 가두고 객체화해온 것이 아닐까.”

정희진 전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민족주의와 여성주의의 갈등은 실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성을 일방 납치한 것으로만 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본다면, “전시 성폭력은 단지 부수적인 피해”에 머물고 “위안부 운동은 민족민주운동의 여성 파트, 사회운동의 성별 분업”이 될 뿐이다. ‘강제로 끌려간 군 위안부’를 피해자로 상정했을 때 한국 여성이든 일본 여성이든 배제의 기준은 성 산업과 관련이 있다. 민족주의나 젠더는 독자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은 “횡단의 정치”를 요구한다고 그는 말한다.

책은 이와 함께 ‘소녀상’으로 제작되고 소비되는 ‘위안부’ 이미지와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 비판, 영어권 학술계의 쟁점이 된 ‘위안부’ 문제, ‘숫자의 정치’로 환원된 피해자, 탈식민 남성의 시선에 의거한 민족주의 담론이 제국주의 담론과 단순히 대립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밝힌다. 472쪽, 2만2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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