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 "한국 선수 손에 뭔가 쥐여주면 큰일 난다"… Z세대의 반란

황해동 기자 2024. 8.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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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회식 기수 맡은 박태준과 임애지. 연합뉴스.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치러진 올림픽은 활·총·칼·라켓에 이어 태권도까지 이른바 'Z세대'의 활약이 빛을 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32개 메달 중 25개를 이들이 따냈다. 13개 금메달 주인공들의 평균 연령이 23.9세다. 이들의 맹활약 덕에 역대 최다 금메달(13개) 타이기록을 거뒀으며 2008년 중국 베이징(32개), 2012년 런던 올림픽(31개) 이후 12년 만에 전체 메달 30개 고지도 다시 밟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최소규모의 선수단(21개 종목, 144명)을 파견한 대회였기에 의미를 더한다는 평이다. 20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당초 대한체육회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 최대 5개를 목표로 잡았다. 순위는 15위 안팎. 결과를 놓고 보면 소박한 목표였던 셈이다. 때문에 체육회 임원진들이 선수진의 기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Z세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메달리스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개성 중시하는 '덕후' Z세대의 올림픽… 이유있는 반란

Z세대는 통상적으로 스마트폰 지급율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통상적으로 1996년부터 2000년, 멀리는 2010년초까지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전 세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자신의 개성 표출을 좋아한다. 간섭받는 걸 싫어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 관심사나 소비활동, 가치관 등에서 '덕후'라는 별칭을 생산할 정도로 자신만의 세계가 남다른 세대다. '덕후'는 특정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갖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그동안 올림픽 무대는 국제대회 경험과 입상 경력이 두터운 선수들이 장악해 온 게 사실이다. 오랜시간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이 뒤집는다는 것은 일종의 '반란'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선수들까지 합세한 '반란'이 이번 파리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일어났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Z세대다운 패기와 집중력, 훈련기간 동안의 성실함 등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전문가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 훈련, 자율과 개성을 중시한 훈련,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을 이용한 훈련,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체계적 훈련, 코치와 감독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진행한 훈련방식 등이 Z세대 반란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선배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이 선배들의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름길이 됐다고 평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개막 알리는 '열기구 성화대'. 연합뉴스.

◇16세 고등학생부터… Z세대가 전체 메달의 75% 수확

대한민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종합순위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금메달은 양궁에서 5개, 사격 3개, 펜싱 2개, 태권도 2개, 배드민턴 1개다. 은메달은 양궁 1개, 사격 3개, 펜싱 1개, 배드민턴 1개, 유도에서 2개를 일궈냈다. 동메달은 양궁 1개, 태권도 1개, 유도 3개, 수영 1개, 탁구 2개, 복싱 1개다. 전체 메달 32개로 역대 최고 성적이다. 21개 종목 144명이라는 역대 최소규모 선수단으로 일군 성과는 Z세대의 맹활약이 기반이 됐다.

단체전 포함 16명의 금메달리스트 중 김우진(1992년, 양궁), 이우석(1997년, 양궁), 전훈영(1994년, 양궁), 오상욱(1996년, 펜싱), 구본길(1989년, 펜싱) 등 5명을 제외한 11명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났다. 금메달 수로 따지면 13개 중 11개를 이들이 빚어냈다. 은메달 7개, 동메달 6개까지 포함하면 전체 메달의 75%를 따냈다.

특히 사격 반효진(여자 10m 공기소총)은 2007년생으로 만 16세 10개월 18일의 나이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선수단 최연소이며, 입문 3년도 되지 않아 대한민국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사격 오예진(여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 선수는 2005년생, 사격 양지인(여자 25m 권총 금메달) 선수는 2003년생이다. 사격 혼성전 은메달로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박하준과 금지현 선수는 24세 동갑내기다. 25m 속사권총에서 은메달을 추가한 조영재 선수는 25세다.

5개 전 종목을 석권한 양궁에서도 2000년대생 궁사들이 주축이 됐다. 3관왕(여자 개인·단체, 혼성)에 오른 임시현 선수가 2003년생으로 올해 21세다. 여자 리커브 단체 금과 여자 리커브 개인 은메달을 수확한 남수현 선수는 2005년생, 남자 리커브 단체 금메달에 힘을 보탠 김제덕 선수는 2004년생이다. 이우석은 1997년생이지만 Z세대에 포함되는 나이다.

한국 펜싱 사상 첫 2관왕을 달성한 대전 출신 오상욱 선수는 Z세대의 시작점으로 보는 1996년생이다. 같은 대전 출신 박상원(남자 사브르 단체 금) 선수는 2000년생이다. 이들과 함께 단체전 올림픽 3연패 달성에 일조한 도경동 선수는 25세다.

'향후 4-5년 간 안세영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극찬을 받은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는 여자 단식 정상을 차지했다. 1996년 애틀란타 대회 이후 28년 만이다. 2002년생 22세 나이에 세계랭킹 1위인 '여제'의 자리에 올랐다. 무릎 부상을 딛고 일군 굴기를 보여줬다. 금메달 수확 후 협회에 대한 작심 발언을 쏟아내는 등 Z세대다운 모습을 보였다.

'탁구 신동' 신유빈 선수는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일구며 한국 여자 탁구 간판으로 우뚝 섰다. 2004년생으로 앳된 모습으로 세계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종주국의 위상을 잃었던 태권도에서도 Z세대의 금빛 발차기가 이어졌다. 남자 태권도 16년 노골드의 한을 푼 58㎏급 박태준은 2004년생이다. 부상 기권으로 은메달에 그친 결승전 상대를 부축해 시상대에 서는 모습은 전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여자 57㎏급 정상에 오른 김유진 선수는 2000년생이다. 세계랭킹 24위지만 준결승과 결승에서 각각 세계 1위와 2위를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근대5종 여자부 성승민 선수는 아시아 최초 이 종목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오렸다. '포스트 장미란'으로 불리는 역도 박혜정 선수는 은메달을 목에 걸며 12년 만에 여자 최중량급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둘 다 2003년생이다.

이처럼 올림픽 무대의 주연들이 젊어졌다. '젊은 팀 코리아'의 여정이 2024년 파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Z세대의 반란'은 한국 스포츠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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