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학업 중단자’라니…그것은 우리의 이름이 아냐

한겨레 2024. 8. 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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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를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아, 학업 중단자시죠?"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평생교육' 담당자들이 우리를 학업 중단자라고 부른다는 게.

그러나 교육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육 기관에서는 여전히 '학업 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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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게티이미지뱅크

검정고시를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문의할 사항이 있어 교육청 평생교육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아, 학업 중단자시죠?”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불리고 있었는지.

아이러니했다. ‘평생교육’ 담당자들이 우리를 학업 중단자라고 부른다는 게. 마치 학교 밖에는 배움이 없다는 듯이, 학교를 떠나는 순간 교육의 영역을 벗어나 버린 것이라는 듯이. 내가 그 호칭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아, 원래 그렇게 부릅니다.”

‘학업 중단’이라는 용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수없이 많다. 일례로 지난해 경기도 학교 밖 청소년 정책 포럼을 통해 발표된 ‘2023 경기도 학교 밖 청소년 진로 및 직업 실태조사’ 결과를 들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학교 밖 청소년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유형이 바로 학업형이었는데, 그 비율은 무려 10명 중 7~8명에 달했다.

물론 우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학교 밖 청소년’이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학업 중단 학생’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학교 밖 청소년’ 역시 학교 안에 있는 청소년을 기본값으로 두고 만들어진 용어라는 점은 아쉽지만, ‘학업 중단 학생’이라는 행정 용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았다. 덕분에 청소년계에서는 ‘학업 중단’이라는 표현이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교육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육 기관에서는 여전히 ‘학업 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나 무용한 용어가 계속 사용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행정적으로 ‘원래 그렇게 불러’ 왔으니까.

이처럼 차별적인 행정 용어가 교육계에 뿌리박고 새로운 용어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선례가 있다. 2007년 10월,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정신지체’를 지적장애인이란 용어로 변경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신지체를 지적장애의 전 용어로 정의했다. 그러나 특수교육법에서는 이후로도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유지했다. 특수교육법에서 ‘정신지체’를 ‘지적장애’로 변경하는 개정안이 공포·시행된 것은 약 9년 뒤의 일이었다. 2016년, 교육부에서는 17개 시·도 교육청에 “정신지체 학생 대신 지적장애 학생이라고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행정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용어를 수정한다는 건 어렵고,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정신지체’가 ‘지적장애’가 되고 ‘정신분열증’이 ‘조현병’이 되었듯, ‘보호종료아동’이 ‘자립준비청년’이 되고 ‘불구자’가 ‘장애인’이 되었듯 옳은 이름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고 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적확한 말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 앞에서 그 일의 난도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부하며 학문을 닦는 일은 모두 학업이고, 학예를 배우는 사람은 모두 학생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을 ‘학업 중단자’라는 말에 가둘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낯설고 차가운 그 이름 앞에 상처받았을 수많은 청소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그건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고. 그 이름에 돌아볼 필요는 없다고.

송혜교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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