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사’ 시대에도 농민은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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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타는 수도권 지하철.
이런 세상에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기후위기와 지겹기까지 한 농민의 힘겨운 농사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아니 할 말로 기후위기가 극심하다고 벼농사나 김장농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확량이 적으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한데, 정부가 앞장서서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에 소비자는 말이 없고, 농민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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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연속 기고 ①
금창영 | 충남 홍성 농부
아주 가끔 타는 수도권 지하철. 대부분의 사람이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나 흥미롭고, 기발한 내용이면 계단을 오르면서도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할까. 이런 세상에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기후위기와 지겹기까지 한 농민의 힘겨운 농사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어찌 농민만 힘들까? 건설노동자도 힘들고, 학교 조리사도 힘들고, 교사도 힘들고, 경찰도 힘들다. 노인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다. 희망이 있으면 그래도 살아갈 텐데, 그도 없으니 죽음을 도모한다. 그러니 ‘각자도사’(各自圖死)라는 말까지 나돈다.
그러나 나는 농부지만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다. 씨앗을 뿌리고, 가꿀 때는 희망이 있다. 실패가 확실하면 씨앗을 뿌리지도 않는다. 아니 할 말로 기후위기가 극심하다고 벼농사나 김장농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1년 대한민국은 온실가스를 6억7660만t을 배출했다. 숫자는 본래 구체적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하지만 그것이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면 그것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다.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6억7660만t라는데 나는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위기가 아닌 걸까.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과 기록적 폭우, 그로 인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고 이번 여름만 해도 폭우와 폭염을 이어가고 있다. 낯선 기후환경과 그로 인한 병충해가 생기면 피해를 보는 작물이 있게 마련이다.그러면 반드시 해당 작물의 가격은 올라간다. 이런 이야기가 회자하면 바로 정부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한다. 이런 일련의 모습은 농부인 내 입장에서 보면 섬뜩하다. 수확량이 적으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한데, 정부가 앞장서서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에 소비자는 말이 없고, 농민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평소에 이야기하던 시장경제 원리는 다 사라지고 없다.
생존의 위기상황이 왔을 때, 나의 삶에 치명적인 위험이 다가왔다고 해서 양심이고, 돌봄이고, 연대가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까? 내가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농촌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젊은 후배는 시설 농사 3년 만에 무릎이 나가 바닥에 앉는 것이 힘들어졌고, 쌈채를 생산하는 20대 중반 여성은 테니스를 쳐본 적도 없지만 ‘테니스 엘보’라는 병을 얻어 보조기구를 끼고 살게 되었다. 농사짓는 노인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자신의 직업이 농민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자신 식탁의 풍요로움을 위해 가축의 사육 환경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나라 농업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의 농업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제시한 탄소중립 정책을 실천하는 농가만 지원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후위기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민이 주체로 서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정부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어쩌면 탄소중립은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변명과 깡통 소리 요란한 지식의 파편이 아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9월7일이란다. 축제의 자리에서 현장에 기반한 대안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자. 우리가 당사자이고, 우리가 해결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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