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국뽕보단 최애의 시대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8. 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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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쏟아진 '황금 주말'에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했다.

이번 올림픽의 성과는 전근대적인 '국뽕'의 시대를 졸업했다는 데 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울면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결승에서 맞붙은 상대가 일본과 중국이면 악플을 쏟아붓는 시대는 옛날얘기가 됐다.

마침내 국가적인 스포츠 행사 앞에서도 촌스러운 국뽕 대신 내가 좋아하는 최애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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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쏟아진 '황금 주말'에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했다. 지난 3일 밤, 젊음의 거리 홍대 일대에서는 영화 '매드맥스'처럼 오토바이들이 질주했다. 치킨과 족발을 실어나르는 배달라이더들은 단군 이래 최대 특수를 맞았다.

이날 양궁대표팀 결승과 신유빈의 경기가 시간차로 열렸다. 테니스 황제 조코비치는 알카라스를 이기고 첫 금메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올림픽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이날 이른 오후부터 번화가엔 손흥민의 토트넘 홋스퍼와 김민재의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은 20대가 넘쳐났다. 쿠팡플레이로 중계된 토트넘과 뮌헨의 친선전은 축덕들에겐 용돈을 탕진해서라도 봐야 할 꿈의 경기였다. 배달의 민족에 이게 무슨 횡재인가.

이처럼 거리에선 스포츠 이벤트의 열기가 느껴졌다. 역대 최저 시청률로 지상파 방송이 울상이란 보도와 다른 모습이었다. 보는 방법, 즐기는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0대에게 물으면 "요즘 누가 TV 봐요?"라고 반문할 거다. 10·20대는 스포츠도 유튜브와 OTT로 즐긴다. 생중계보다 댓글창이 더 재미있어서다. 양궁 같은 스피디한 경기는 실시간으로 보지만, 몇 시간씩 걸리는 경기는 쇼츠로 챙겨본다. 하이라이트로도 '찍먹'은 충분해서다.

이번 올림픽의 성과는 전근대적인 '국뽕'의 시대를 졸업했다는 데 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울면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결승에서 맞붙은 상대가 일본과 중국이면 악플을 쏟아붓는 시대는 옛날얘기가 됐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면 국적 불문 '최애'로 삼고, 편견 없이 응원을 보내는 성숙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비인기 스포츠에서도 최애를 발견했다. 일론 머스크마저 '입덕'시킨 사격의 김예지가 대표적이다. 선수 자신도 은메달에 주눅 들지 않았다. 게다가 생활체육의 양대산맥인 탁구와 배드민턴에선 메달리스트까지 나왔으니 전국의 동호인들이 환호할 만한 경사였다. 진짜 스포츠 강국은 메달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스포츠 인구가 많은 나라다. 한국도 메달밭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중·일이 이번 대회에서 역대급 성과를 낸 건, 부유해진 나라만큼 생활체육인이 늘어나서일 것이다.

마침내 국가적인 스포츠 행사 앞에서도 촌스러운 국뽕 대신 내가 좋아하는 최애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지구 한편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열린 이 평화의 축제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김슬기 문화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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