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사진을 만나 목청을 높이다, 시·사진집 『부산, 사람』 [새책]
[OSEN=강희수 기자] 부산을 사랑하는 작가들이 부산을 주제로 삼은 시와 사진집을 내놨다. 시집과 사진집이 따로 엮인 게 아니다. 시와 사진이 연관된 주제로 묶여 두 배로 감흥을 자아내는 시·사진집이다.
시인 최주식과 사진가 임재천이 의기 투합해 『부산,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사진집을 발간했다. 최주식 시인의 주옥같은 시 50편과 임재천 작가의 50장의 사진이 시·사진집이라는 형태로 엮어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이쯤되면 두 사람의 인연부터 궁금해진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근 30년에 이른다. 지금은 없어진 월간 '자동차생활'에서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난 해가 1995년이다.
임재천 사진가는 1년여 만에 퇴사하고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후 7년 만에 우연히 여의도에서 재회한다.
그 당시 이미 편집장이 된 최주식 시인은 잡지 연재를 위해 ‘포토기행’이란 여행 꼭지를 임재천 사진가에게 제안하고 이후 3년에 걸쳐 43개 지역을 함께 다니게 된다. 이때 촬영한 사진 중 상당수가 2013년 눈빛에서 펴낸 '한국의 재발견'에 수록됐다.
월간 '자동차생활'이라는 제호에서 최주식 시인의 직업을 눈치챈 이들도 있겠다.
예감 그대로다. 부산 출신의 최주식 시인은 '자동차생활'에서 명필로 이름을 날린 자동차 기자다. 현재도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토카코리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자동차 기자로서의 명망도 높다. ‘월드 카 오브 더 이어’ 한국 심사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업계의 신망을 얻고 있다.
자동차 기자로 출발한 최 편집장이지만 꾸준히 시 작업을 병행했다. 그러다 202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등단하면서 '시인'이라는 직함을 공식적으로 얻었다. 저서로는 『20세기 자동차 열전』과 『그 도시에는 바다가 있네』를 비롯해, 『더 헤리티지 오브 더 슈퍼카』 등 여러 편저가 있다.
경북 의성 출생의 임재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사라지고 변해가는 한국 풍경의 기록에 무게를 두고,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촬영해오고 있다. 2008년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9차례의 특별전 및 초대전을 국립김해박물관, 희수갤러리, 스페이스22 갤러리에서 가졌으며, 저서로 눈빛출판사 『한국의 발견』 시리즈 사진집 5권, 『소양호 속 품걸리』(2014, 눈빛), 『한국의 재발견』(2013, 눈빛),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2008, 문학동네) 외 공저가 여러 권 있다.
최주식 시인은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부산의 모습을 담아낸 임재천의 사진은, 단지 영감을 주었다는 말로 부족하다”라고 칭송한다.
이 말에 응하는 임재천 사진가의 대답도 간담상조(肝膽相照)다. “공간적으로 부산을 다루고 있지만 이 시들은 하나의 지역 정서를 넘어 이 땅 어느 곳에 사는 누구나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산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정서는 시와 사진이라는 형태적 차이만 있을 뿐, 부산이라는 장소에 대한 기억과 확장, 그 너머에서 일치한다.
『부산, 사람』 시·사진집 서두에 나오는 “권태의 바다에서 걸려 올린, 영화라는 꿈”이란 산문은 두 사람이 합작한 ‘포토기행’ 중 하나인 ‘부산’ 편에서 퍼왔다. '자동차생활' 2003년 11월호에 실린 글이다.
이 산문은 어쩌면 이번 시·사진집의 출발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합작한 새 지평의 프롤로그에 실리는 게 윤회처럼 자연스럽다. 낡은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인상적인 당시의 부산 풍경은 이 책이 주는 덤이다.
이번 시·사진집의 창작은 임재천 사진가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소치 동계올림픽 한국 전시작가로 초대되는 등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깊이와 폭을 넓혀오던 임재천 사진가가 지난 해 최주식 편집장의 등단 소식을 접하게 된다.
기회를 포착한 임재천 사진가는 자신의 『한국의 발견 03 – 부산광역시』(2017, 눈빛)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 가운데 50점을 골라 주며 사진과 영감이 통하는 시를 써보라고 제안한다. 최주식 시인의 등단작 ‘파도는 7번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와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가 그렇게 나왔다.
"붉은 땅이었다 / 노을이 지지 않아도 / 바다는 붉디 붉었다 / 붉은 깃발이 / 해풍에 나부꼈다 / 적기라고 불렀다 / 적기 산다고 했다 / 감만동이나 우암동 언저리 / 적기 산다고 했다"
감만동 사진과 함께 실린 시 <적기>의 일부분이다. 감만동이나 우암동 일대를 한때 적기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동구의 매축지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 라는 시에서 매축지는 ‘가두리 바다 위’로 표현된다. 시의 화자는 황령산이 되었다가 영도 조선소 노동자의 손에 들린 도시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비슷한 경험이나 추억도 빠질 수 없다.
『부산, 사람』 시·사진집의 독창성은 시와 사진의 관계성에 있다. 두 개의 객체가 서로의 배경이나 장식이 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긴밀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은 단지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시대와 더불어 호흡한다. 『부산, 사람』 시·사진집은 그 휘발성의 호흡을 지면 위에 소중하게 포집하고 있다.
『부산, 사람』 시·사진집은 8월 15일부터 전국 주요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된다. 8월 24일에는 서울 인사동 안터 공간눈빛 갤러리(부산식당 옆)에서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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