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 案에 브레이크? ‘후방→전면’ 나선 여야 정책위의장들
“‘韓-李’ 대권 행보 외연 확장에 플러스 기대…계파 간 가교 역할도 가능할 것”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제3자 특검 추천안) 뜻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진행 중인 수사가 있음에도 그 과정 중에 특검법을 지향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기준과 공제 한도를) 그렇게 막 올릴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정밀한 검토나 판단 때문에 하신 말씀은 아니라 생각한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지도부의 일원이지만 정책·전략 기획 등 '후방 지원' 역할에 머물러 비교적 존재감이 약했던 거대양당의 정책위의장들이 최근 정치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각 당 실권자들의 정책이나 현안 기조와 다른 결의 목소리로 제동을 걸면서다. 여기에 두 사람은 지난 7일 첫 정책위의장 회동을 통해 경색된 여야의 새로운 협상 테이블로 주목받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들이 향후 양당의 계파 정국 소용돌이에서도 새로운 '키' 역할을 하며 전면 부각될 것으로도 보는 분위기다.
'정점식 거취' 계기로 떠오른 '정책위의장'의 존재감
최근 '정책위의장' 직이 정치권 핫 키워드로 처음 올랐던 순간은 여당에서 친윤(親윤석열)계 정점식 전임 정책위의장의 거취를 둘러싼 당내 계파 갈등이 불거졌을 때다. 물론 당시는 정책 책임자로서 업무에 대한 관심 대신 당 최고위원회의 구성원으로서 계파 구도에 미칠 영향이 더 큰 관심사였다. 친윤계인 정 전 의장이 빠져야 전체 9명의 최고위 구성원 중 친한(親한동훈)계가 5명으로 과반을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 대표는 정 전 의장이 자진사퇴하자 당내 4선 중진의 김상훈 의원을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했다. 김상훈 의장은 21대 국회 기재위원장 출신의 '정책통'에 '안정감'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대표도 김 의장 내정 직후인 지난 2일 취재진에 "(김 의원은) 정책에 있어서 대단히 뛰어나고 내로라할 사람이라는 추천을 여러 군데에서 받았다"며 "22대 총선에서 선거구 획정에 대해 논의할 때도 유능하고 안정감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의장은 첫 일성부터 한 대표의 정책에 무조건 호응하는 대신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최근 정치권을 흔든 '채해병 특검법'과 관련해 한 대표는 '제3자 특검 추천안' 카드를 꺼내며 전향적 태도를 보인 반면, 김 의장은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책위 차원에서 검토한 바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특검법은 현재 수사 결과가 발표가 되고 나서 그 수사 결과가 미진할 경우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특검 자체를 반대했다.
김 의장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전국민 25만원 지원금법'에 대해서도 한 대표와 다른 결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 대표가 '무작정 반대할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인 것 같다"면서도 "정부의 재정 여력·판단이 우선 전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앞서 '선별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과 대조적인 태도다.
민주당에서도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금투세' 현안을 놓고 정책위의장이 연일 뜨거운 감자로 이슈의 중심에 선 모습이다. 지난 4·10 총선 직후 이재명 당시 대표에 의해 임명된 진성준 의장은 먼저 '종부세 폐지'를 놓고 친명(親이재명) 주류층과 대립각을 세웠다. 박찬대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에 이어 이재명 전 대표까지 최근 전당대회 과정에서 종부세 완화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진 의장은 '당색'과 '원칙'을 바탕으로 종부세 폐지·완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금투세 시행을 두고도 진 의장은 이 전 대표와 이견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금투세 폐지론에 이어 이 전 대표는 과세 기준 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한 반면, 진 의장은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본인이 '금투세를 폐지하라' '밤길 조심하라'는 등 온라인 악플테러와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하면서도 "금투세는 부분적인 손질이 있더라도 예정대로 (2025년에) 시행돼야 한다"며 소신을 이어갔다.
김상훈은 '親尹-親韓' 중재, 진성준은 '親明-親文' 단결 기대?
양당 입장에선 정책위의장들의 소신 행보가 당내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만큼 오히려 각 당 이미지에 '플러스'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국민의힘의 한동훈 대표와 당권 연임을 앞두고 있는 이재명 전 대표는 거대양당의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을 필두로 한 일극체제가 심화될 경우 양당은 당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중도층을 포섭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저쪽 당이나 우리 당이나 당내 다양성 보여주며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이 '한동훈-이재명' 구도 대권 준비에 있어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어차피 의원총회 등을 통해 당론은 결국 하나로 모이는 만큼, 그 과정에서 격론을 펼치거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각 당 대표나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전체에 '윈윈'이라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두 정책위의장의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오히려 당내 계파 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도 감지된다. 일단 김 의장의 경우는 친윤·친한계에 모두 걸쳐있는 만큼 이번 인선 과정에서도 계파 간 파열음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김 의장은 추경호 원내대표와도 대구 지역 중진이자 21대 국회에서 정부 경제부총리-국회 기재위원장으로서 호흡을 맞춘 만큼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근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의 갈등설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당초 친문(親문재인)계였으나 22대 대선 정국부터 친명계로 분류된 진 의장도 당의 분열 악재에서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근 민주당도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으로 향후 대권 구도 등 여러 부분에서 계파 간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다. 관련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도 2기 지도부가 꾸려진 후 진 의장이 유임 여부를 두고 고심을 할 것"이라면서도 "진 의장의 역할론을 놓고 유임을 선택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