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가락’ 겨눈 삿대질…그래서, 통쾌함 느꼈나요? [플랫]
지난 6월27일 부산 모빌리티쇼 프레스데이 당일, 르노코리아가 그랑 콜레오스를 공개했을 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른바 오로라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 2020년 XM3 출시 이후 4년 만의 신차였다. 르노코리아 부스는 취재와 촬영을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곧 식었다. 아니, 지나치게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써야 할까. 그랑 콜레오스를 둘러싼 온라인 여론을 분노와 혐오 정서가 지배한 것이었다.
르노코리아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 ‘르노 인사이드’에 올라온 영상 때문이었다. 콘텐츠를 진행하는 여성 직원의 손가락이 문제로 지목됐다. 엄지와 검지를 디귿자(ㄷ)처럼 하는 집게손가락이 맥락과 관계없이 여러 번 등장했다. 온라인 여론은 즉각 반응했다. 르노코리아는 곧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모델을 다루는 유튜브 영상 댓글도 차마 옮겨쓰기 민망한 수준의 조롱과 분노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집게손가락이 이런 역할을 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넥슨은 지난해 11월26일 “현재 커뮤니티에서 엔젤릭버스터 홍보물과 관련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용사님(유저)께 걱정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해당 홍보물은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사과 공지문을 올린 적이 있었다. 넥슨이 제작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 엔젤릭버스터를 홍보하는 영상에 ‘그 손가락’이 등장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플랫]“집게손가락 동작 금기시는 현재의 풍토”…‘사이버 괴롭힘’ 면죄부 준 경찰
2021년에는 편의점 GS25 홍보 포스터에서 그 손 모양이 발견됐다는 항의를 받았다. GS25도 사과했다. 무수히 많은 기업, 정부 부처, 지자체가 비슷한 논란을 경험했다. 사과, 수정, 취소된 이미지도 여럿이었다. 그 손가락으로 의심되는 이미지가 남혐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관계가 증명된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논란은 논란 그 자체로 힘이 있었다. 논란이 지나치게 거세게 느껴지니 재빨리 사과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집게손가락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존재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였다. 메갈리아는 급진적인 성향의 여성주의 커뮤니티.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에는 워낙 예민하고 복잡다단한 정체성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커뮤니티였다. 로고의 (표면적) 의미는 한국 남성의 음경이 작다는 것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른바 ‘미러링’이라는, 그들의 전술에 대해 다시 설명하고 이해해야 한다. 제대로 하자면 논문 한 편의 이야기가 필요한 단어. 사실상 너무 많은 왜곡과 현상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분노와 혐오가 그 배경을 속속들이 알고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손가락 모양과 유사하거나 그것을 의도적으로 노출했다는 의혹 자체만 있으면 강력한 혐오 정서의 방아쇠로 작동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사실관계가 아니었다. 의혹과 분노 그 자체였다. 온라인 여론의 권력과 존재감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자동차 리뷰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독자 성별 분포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구성상 남초 커뮤니티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르노코리아가 모든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고 사과문을 게시한 건 6월28일. 6월29일에는 해당 영상에 출연했던 당사자가 사과문을 썼다. “저의 불찰로 인해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라 쓰면서도 “특정 손 모양이 혐오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제가 제작한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그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사과문 이후 온라인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르노코리아의 신차 소식이 궁금해서 유튜브 영상을 클릭한 사람들도 그 무수한 댓글들을 통해 폭력과 혐오의 분위기를 접하기 시작했다.
지금 ‘르노 인사이드’ 채널에는 르노코리아의 세 번째 공식 사과문만 올라와 있는 상태다. “사안의 복잡성과 민감성으로 인해 초기 사실관계 확인 이후 상세한 내용의 회사 입장을 안내드리기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된 점 죄송하다”며 사실관계 파악과 적절한 후속 조치에 대한 공지가 적혀 있었다. 영상에 출연한 당사자에 대해서는 직무수행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고도 썼다. 댓글은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 현상이니까. 메갈리아가 존재했던 것도, ‘그런’ 의미의 로고를 썼던 것도, 그 손가락이 분노와 혐오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온라인에서의 소요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축소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온라인에서의 여론이 실제 기업들의 사과로 이어진 전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로지 온라인 여론 때문일까? 댓글 창에 넘실거리는 혐오 언어들이 그 정도의 권능을 가진 것 또한 현실일까?
📌[플랫]“두세 명만 작업하면 여론 바뀐다”…협박·공갈로 ‘영역’ 넓힌 사이버렉카
온라인에서의 논란과 현실의 사과 사이에는 늘 미디어 혹은 유사 미디어가 있었다. 르노코리아 관련 이슈에서도 자동차를 다루는 몇몇 대형 미디어와 유튜브 채널들이 제각각 의견을 밝혔다. 각기 다른 채널이었지만 맥락은 놀랍게 닮아 있었다. 르노코리아가 4년이나 절치부심한 결과를 개인이 망쳤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개인의 일탈을 걸러내지 못했으니 그 절차와 관련한 모든 직원 또한 같은 정도의 혐오 사상을 갖고 있을 거라는 의혹도 함께였다. (그들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을 주로 썼지만.) 2027년까지 오로라 프로젝트에 투자한 7000억원을 포함해 총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거라는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의 말을 인용해 ‘르노코리아 손가락에 발칵… 1조5000억원 날릴 위기’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는 (늘 그렇듯) 제목 속에만 있었다. 지난 7월26일,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의 계약 대수는 누적 1만대를 돌파했다. 공개 후 사전계약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의 성과였다. 그러니 르노코리아가 1조5000억원을 날린다면 그게 손가락 때문일까?
심지어 몇몇 유튜브 채널은 거의 댓글 창이나 남초 커뮤니티와 비슷한 정도의 혐오 정서로 분노하는 영상을 올렸다. 도무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감정적 표현이었다. 그러니 1. 해당 직원을 일벌백계해야 하고, 2.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하며, 3.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시스템 또한 공개해야 한다며 주장과 선동의 경계에 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든 종류의 혐오에 반대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혐오 여론과 비슷한 주파수로 유사한 분노를 조장하는 일이 또 다른 혐오인 줄은 모르는 채. 그들의 청자는 그들의 구독자임을, 그러니까 그들의 과장된 분노가 댓글 여론에 발맞추기 위한 발언임을 잘 알면서도 다분히 전략적으로.
최초의 영상은 혐오를 위해 갑자기 열린 훌륭한 무대였다. 하지만 혼자 추는 춤이 어떻게 파티일 수 있을까. 이번 무대에서 1조5000억원, 한 명이 그러니 조직의 모두가 그럴 거라는 마녀사냥은 더 큰 자극을 위해 미디어가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는 소재일 뿐이었다. 어설펐던 사과문, 댓글 창의 분노와 혐오, 합리적인 듯 혐오를 조장하는 미디어(혹은 유튜브 채널들)의 장삿속이 다 같이 추는 춤이었다는 뜻이다.
거짓은 그게 거짓으로 증명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하지만 사실과 사실 사이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섞어 분노와 혐오로 엮은 서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진화한다. 추정과 의심 사이에서 영원히 확장하는 분노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그 사이에 구독자와 조회 수에 복무하는 미디어들이 있다.
인기가 수익과 직결되는 세상에서 미디어의 품위 같은 걸 기대하는 건 좀 느긋하고 어수룩한 마음일까. 인기가 미디어의 필요조건은 아니었다. 미디어의 영향력과 품위도 숫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미디어는 말을 생산하고 말은 사고를 지배한다. 무엇을 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당신의 생각을 어디에 위탁할 것인가. 혐오의 춤을 같이 추면서 쉽게 분노할 것인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명료하게 바라보고 생각하기가.
▼ 정우성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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