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그린벨트 해제, 서울 폭염 더 악화시킬라
서울 폭염 취약 동네 82%엔 공원·녹지 전무
“‘이미 훼손됐다’는 논리로 개발 정당화” 비판
정부가 신규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일부 해제하기로 했다. 서울에 최소 1만채를 비롯해 총 8만채의 수도권 신규 택지를 지정하기 위함이라는데, 2012년 이후 12년 만에 이뤄지는 이런 조처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여름철 폭염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시 외곽의 개발제한구역 해제가 ‘도시열섬’ 현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열섬은 녹지가 부족하고 열 흡수를 잘 하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등이 많은 도심이 주변보다 온도가 높은 현상을 말한다.
■부산 서쪽, 녹지 사라지고 지표 온도 5.46도 올라
실제 2000년대 후반 부산광역시에서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된 지역에선 지표면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등 열섬으로 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2일 한국방재학회논문집 제21권 5호(2021년 10월)에 실린 논문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따른 도시열섬의 형성 가능성 연구: 부산광역시를 대상으로’(박지용·강승원·전선민·정주철)를 보면,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된 곳 가운데 열섬으로 변한 지역이 전체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 28.1%에 달했다. 이 논문은 부산시의 개발제한구역이 온전히 보전된 2000년과, 해제가 어느 정도 진행된 2018년 두 시점을 두고 여름철 지표면 평균기온을 분석한 것이다. 지표면 기온은 인공위성(랜드샛7, 8) 자료를 활용했다. 부산시를 중심으로 한 부산권엔 당초 597.09㎢의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됐는데 2002년 86.29㎢ 해제를 시작으로 2018년 12월까지 총 183.76㎢가 해제됐다.
분석 결과 2000년의 경우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된 부산시 외곽이 주변보다 온도가 낮지만, 도심은 상대적으로 높은 모습이 확연히 구분돼 나타났다(아래 그림 왼쪽). 반면 2018년엔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된 부산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열섬이 자리 잡은 모습이 확인된다.
부산시가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한 뒤 진행한 신도시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해당 지역 녹지가 줄고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등 불투수 면적이 증가했고, 이런 토질 변화가 도시 기온을 올리고 새로운 도시열섬을 형성한 것이다. 해당 지역의 2000년과 2018년 평균 지표 온도 차는 무려 5.46도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부산 (강서구 일대) 에코델타시티 개발사업의 경우 녹지와 농경지가 대부분 연약지반 개량공사 등으로 황무지로 변했는데, 이러한 변화가 실제 개발이 완료되고 사람이 들어서기 전임에도 온도 차에 따른 핫 스팟(열섬) 형성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도 외곽지역·한강 주변만 ‘시원’
이런 상황은 서울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중심 상업지역의 온도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서울 외곽 녹지지역보다 평균 3.46도 높다. 또 인구 1인당 도시 녹지 면적이 24.79㎡로, 전국(266.01㎡)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과밀하고, 도시열섬 현상도 심각하다. 2022년 학술지 ‘국토계획’에 실린 ‘스마트서울 도시데이터 센서를 활용한 미시적 폭염 취약성 평가에 관한 연구’ 논문(김지수·강민규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을 보면 이런 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 논문은 체감 기온과 습도 등을 수집하기 위해 서울시 전역에 1100대가 설치된 측정 장비 ‘에스닷 센서’의 측정값과 노인이나 어린이 인구 분포, 녹지율 등의 자료를 종합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서울의 행정동 전체 426개를 세 가지 군집으로 나눴다. 이중 기후노출 및 민감도는 낮고 적응능력은 높아 가장 이상적인 ‘군집1’은 98개 행정동으로 확인됐다. 이들 군집1 지역은 서울 외곽 지역과 한강 수계를 따라 분포했다. 구체적으로 노원구 일대와 강남구, 강동구, 서초구 일대인데 모두 개발제한구역과 인접한 곳들이다. 논문 저자들은 “이들 지역이 녹지가 풍부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열 축적 완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폭염에 가장 취약한 ‘군집3’에 해당하는 201개 행정동은 폭염에 취약하고 열대야일수도 많았다. 높은 불투수 면적 비율과 인구밀도 등 도시환경요인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 중 82%에 이르는 165개 행정동엔 공원과 녹지가 아예 없었다. 논문 저자들은 “군집3 유형에 해당하는 행정동들은 공원화 우선 지역을 지정해 소공원 조성 등 녹지 인프라 확충을 통해 국지적으로 온도를 저감시키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서울시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5분 이내 거리 공원 조성’을 위해 현재 31.2%인 녹지율을 2040년까지 33.9%로 올리고(서울공원녹지기본계획), 훼손된 산림과 생활권 주변 유휴토지에 나무를 심는 등의 조치를 기후위기 적응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서울시 기후위기 적응 추진전략과 과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설명하며 “녹색 공간으로서 기능을 이미 상실한 곳에 한정해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겠다고 한 것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서울, 땅이 숨 쉴 공간이 없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정책국장은 이는 “전형적인 개발론자들의 논리”라며 “2020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태릉 골프장을 해제하려 할 때에도 체육시설이어서 ‘훼손된 그린벨트’라는 논리를 앞세웠지만, 정작 살펴보니 원앙과 삵이 살고 주변 숲과 이어져 생태계가 연결된 곳이었다. 서울은 땅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녹지를 확보하고 훼손한 곳을 복원해야 할 판에 ‘이미 훼손됐다’는 논리로 개발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생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국토를 미래세대에 넘겨주기 위해 1971년부터 19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지정됐다. 전국 14대 도시권에 총 5397㎢가 지정됐다가 김대중 정부 이후 주택공급 등을 이유로 해제돼 지금은 3793㎢(국토 면적의 3.8%)만 남았다. 이 가운데 서울의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149.09㎢로, 서울 전체 면적의 4분의 1가량이다. 정부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오는 11월 구체적인 해제 지역을 발표할 계획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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