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소설 낸 사회학자 송호근 "김형석, 뉴라이트? 근대성 패러다임"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8월 12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한 분의 인생이 소설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독립청년단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던 백마탄 김장군 김경천 지사의 이야기인데요. 소설 쓰는 사회학자 송호근 한림대 석좌 교수가 출간한 <연해주>라는 소설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사회학자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인지 직접 저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 교수 전화 연결해보죠. 교수님 안녕하세요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이하 송호근):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귀빈: 네 반갑습니다. 교수님 벌써 세 번째 장편 소설을 내주셨는데요. 책이 언제 나왔죠?
◇송호근: 지난주에 나왔어요.
◆박귀빈: 저희가 교수님께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송호근: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박귀빈: 이런 책을 내주셨으니 저희가 더 감사한 마음이고요. 일단 <연해주> 어떤 책인지 소개 먼저 해주세요.
◇송호근: 연해주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만강 건너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그 일대 시베리아 동부 쪽인데 그쪽 얘기가 대체적으로 그 현대사회에서는 가려져 있어서 그 속을 한번 들어가 본 거죠. 그게 일종의 독립 투쟁사인데 거기에 다른 나라의 독립투쟁사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일제의 점령하고자 하는 점령 욕심하고 그다음에 볼셰비키 혁명하고 조선의 독립투쟁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 곳이거든요. 세계사적으로 보면 그런 곳이 거의 없죠. 그런 의미에서는 한국의 독립투쟁사를 조선의 한국의 특수한 것으로만 생각 해왔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보편사 쪽으로 편입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박귀빈: 우리 독립 투쟁 역사 안에서 정말 연해주라는 이 장소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죠.
◇송호근: 사실은 독립투쟁의 기원이 거기서 비롯됐고요. 그리고 한인들이 십시일반 자식들을 그대로 내보내고 그러면서 일제하고 항거했던 초기에 독립투쟁의 원형이 그곳에 묻혀 있다고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귀빈: 소설 제목이 연해주이고요. 교수님이 책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연해주로 갔다 이런 표현을 하셨는데요. 소설 집필하시면서 연해주도 직접 가보셨어요?
◇송호근: 10년 전에 두어번 정도 갔거든요. 그런데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그다음에 장춘, 하얼빈 이렇게 올라갔는데 저는 이제 하얼빈에서 거꾸로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내려갔었거든요. 최재형 선생의 생가도 봤고 그다음에 이상설이 1917년도에 죽었는데 그 유허비가 우스리스크 강 옆에 있어요. 그러니까 독립운동의 기원이나 열정이 거기에 일종의 유산으로 묻혀 있는 곳이죠.
◆박귀빈: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있었습니다. 방금 언급을 해 주시기도 했고 대표적으로 홍범도 장군도 있고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이죠. 김경천 장군을 비롯해서 남만주 삼천이라고 불렸던 지청천 신팔균 기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이 중에서 김경천 장군을 주목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송호근: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사람들 중에 일본 육사 출신이 지청천 장군하고 지금 얘기한 김경천 장교하고 두 사람 정도로 기억이 돼요. 그런데 이제 지청천은 북간도에서 중국 내륙으로 갔고요. 김경천은 연해주에서 계속 남아서 투쟁을 했는데 김경천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 육사를 나오고 그다음에 3.1운동의 휘말렸다고 보는 3.1운동의 시위대 속에 있었고 그것도 우연한 거죠. 그리고 이제 망명을 해서 연해주로 갔는데 연해주에 가보니까 독립투쟁을 할 만한 독립적인 열정은 있는데 할 만한 여건들이 그렇게 잘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안 지역에는 일본군이 점령을 하고 있었고 그다음에 서쪽으로는 볼셰비키 혁명군이 몰려오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독립투쟁을 밀고 나갔던 인물이죠. 그러니까 세계사의 한 주인공까지는 아니지만 세계사의 한 장면을 실행을 했던 그런 사람 이라 조선의 어떤 특수성이라고 그럴까요? 이런 것이 역사의 보편성으로 승화하는데 여러 가지 계기들을 체화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김경천 장군을 주목했던 것이죠
◆박귀빈: 그렇군요. 주인공 이야기를 한번 해볼게요. 김경천 지사 김경천 장군입니다.말씀하셨듯이 일본군 장교 출신이에요. 일본 육사를 졸업했고요. 그렇다면 당시 독립운동가를 어찌 보면 탄압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분은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됐을까요?
◇송호근: 그게 이제 군인 집안인데요. 형은 고종의 친위대 부령이었고 아버지는 군기창장이었는데 형은 1906년 아버지는 1908년에 죽었어요. 죽음의 이유가 말하자면 일본하고 조선에 서로 정치적인 그런 흑막 속에서 죽었는데 그 이유를 이게 과연 뭘까 라는 거를 계속 생각을 하면서 1910년대를 지내왔거든요. 1910년대에는 일본에서 지식인들 유학생들이 가서 이제 독립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열정들을 쳐내고 했을 텐데 그 와중에 있으면서 자기가 일본군 도쿄 기병연대 중대장이었는데 계속 회의를 가졌거든요. 그러면서 조선으로 휴가를 받아서 돌아왔는데 우연히도 3월 1일날 시위에 뛰어들었어요. 본인이 뛰어들었다기보다는 윤치호 일기에도 나오는데요. 윤치호 일기에 보면 3월 1일날 종로에서의 장면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윤치호 선생은 그 옆에 김경천이 있었다는 얘기는 안 해요. 그런데 경천일기를 보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뛰어들었는데 그러면서 이제 모든 가슴에 응어리들이 풀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제 지금은 조선주차군이죠. 조사를 받다 드디어 나는 이제 군복을 벗고 망명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계기가 어떻게 보면 정말 드라마틱하죠. 아마 그런 인물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박귀빈: 그렇군요. 교수님께 김경천 지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김경천 지사의 당시 어떤 그 마음속의 갈등, 고뇌 그리고 결국은 독립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 결단의 순간까지 얼마나 내적 고민이 많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실질적으로 보통 우리 사회학자분들은 그런 어떤 인간의 내밀한 감정 표현 이런 것보다는 전반적으로 약간 이렇게 사회적인 것들을 조망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잖아요. 사회학자이신 교수님께서 이렇게 소설가가 되셔서 약간 조금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셨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송호근: 사회학을 제가 한 40년을 했는데요. 사회학의 핵심은 객관성이라고 하고 그 객관성을 추정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론들을 조직하고 하는데 그 속에 보면 객관성이라고 하는 것 속에 구체적인 역사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추상화돼서 올라오기 마련이거든요.그러니까 개인이 개인이 아니고 추상적인 인물이 돼서 전체적인 객관성을 구성하게 됩니다.그거를 하다 보니까 부족한 점이 굉장히 많죠. 왜냐하면 개인들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런 구체적인 질문들이 자꾸 생겨나고 거기에 대한 답을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역시 문학이니까 이제 문학 쪽으로 내려간다.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개인의 심정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심정 속에 있는 언어와 분노를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그런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귀빈: 사회학자로서 그런 일을 하시다가 또 소설가로서 하다 보니까 서로 보완되고 교수님 마음속에서도 뭔가 만족감이 좀 있으실 것 같아요.
◇송호근: 글쎄요. 글을 쓸 때는 이제 만족감이 있었는데요. 책이 출간되고 나니까 조금 허탈하더라요
◆박귀빈: 그런가요? 그건 어떤 마음이실까요?
◇송호근: 그 사람이 언어를 내가 제대로 끄집어냈는지 역사적인 시간하고 제대로 어떤 화두를 만들어냈는지 이걸 일반적인 독자들께 이런겁니다 라고 하고 제대로 차려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 허전하기는 합니다.
◆박귀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소설 그 첫 페이지에 보면 이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나와 있고 정말 수많은 사실들을 고증을 하고 쓰셨을 것 같아요.
◇송호근: 네 그렇죠. 왜냐하면 제가 이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 했을 때 그 시절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반으로 해서 역사적인 논문들을 수도 없이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 시대에는 이제 우리가 내가 알고 있는데 그게 이제 과연 무엇일까 아까 말씀드린 그 객관적인 이론 속에 그냥 사장돼 버린 것은 아닐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 지금 고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이제 평준화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연해주의 독립운동사는 독립투쟁은 소련이 거기를 장악한 뒤에는 역사적인 자료가 그렇게 정확하게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그것을 수집하고 체계화하는 역사학자가 더러 있습니다마는 그분들의 고투가 참 눈물겹죠. 그런데 그분들 고정을 많이 해 놨고요. 또 기왕에 저서도가 나와 있으니까 큰 줄거리를 가지고 그걸 연결시키는 심정의 어떤 묘사라든가 심정의 어떤 상상력 공간 이거는 이제 문학하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그건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박귀빈: 알겠습니다. 책을 보면 기차가 경적을 울렸다. 연해주 한인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던 블라디보스토크 구역은 사실은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 처단하기 위해서 열차를 탔던 곳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먹먹했다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계셔서요.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요?
◇송호근: 그게 1936년 말부터 시작이 됐는데요. 수탈민의 민족 이동 강제 이주 정책인데 사실은 그게 독일에 의해서 폴란드인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밀려간 것, 강제이주 당한 것, 그다음에 소련에 의해서 우크라이나 인들이 농토에서 쫓겨난 거 이런 것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요. 소련의 어떤 야욕이라고 할까 그다음에 독일 제국의 어떤 잘못된 시대 진단이라고 할까 또는 정책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의 한 방편으로 한 결과로 이루어진 현상인데 슬프기 짝이 없죠. 17만 명이 한꺼번에 불모지에 버려졌으니까 이런 것들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거는 뭐 조선만 나간거냐 이렇게 이제 얘기하면 거의 이제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되는데 이것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어요.
◆박귀빈: 김경천 지사의 마지막을 묘사하면서 침묵의 유언 이런 표현을 쓰셨습니다. 지금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김경천 지사가 삼킨 유언 무엇이었을까요?
◇송호근: 그게 이제 정말 저도 써놓고서 궁금한데요. 사실은 끝내 패배다 끝내 좌절이다 그러니까 패배라고 하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계속 행군할 수밖에 없는 그 심정. 그게 이제 시대가 명령했던 인생의 길 또는 혁명가의 길이라고 할까요? 나는 패배한다 그러나 이 길을 그만둘 수는 없다 계속한다. 그걸 이제 달빛 속에서 결의하는 마음 그것 아니었을까 아마 일제에 아마 항거하던 독립투쟁 독립운동가들 또는 투쟁가 투사들이 대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마음 한구석에 그러면서 이제 자신을 결국은 대의에 바쳤던 거죠.
◆박귀빈: 그러니까요. 김경천 지사 이런 김경천 지사가 우리에게 그동안 왜 안 알려졌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경천 지사와 연해주 한인들이 당시에 볼셰비키 혁명군과 한편이 되어서 싸웠기 때문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송호근: 실제로 1920년으로 돌아가 보면 조선을 도와줄 나라가 유일하게 러시아뿐이었어요. 중국은 내란에 휩싸였고 미국은 멀고, 그다음에 일본은 이제 침략을 계속해오고 있고 러시아가 그걸 막아주는 러시아에 의존하는게 대세였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제 볼셰비키 혁명이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걸 두고 이제 이 사람은 볼셰비키다 사회주의자다 공산주의자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직업론으로는 맞는데 당시로 돌아가 보면 절박했던 상황이었거든요. 아마 당시에 이동희 같은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가 뭡니까 하면 조금 얘기는 하겠지만 이건 민족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선택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연해주가 그 복잡했던 고난과 고민과 애환이 저장된 곳인데 1962년에 무장해제를 당하면서 모든 게 끝나버린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거죠. 보통 뭐 그렇습니다.
◆박귀빈: 그렇습니다. 역사 문제로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광복절을 앞두고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임명이 됐는데 뉴라이트 논란으로 광복회장을 비롯해서 독립운동 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기념식도 불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통령의 인사와 이런 반응들 어떻게 보고 계세요? 교수님
◇송호근: 김형석 신임관장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서요.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려운데 기사를 이렇게 훑어보면 우선 이분이 주력했던 분야는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 재단 이사장이라든가 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아무튼 북한을 바라보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회운동가적인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저서도 몇 권 있는데 그걸 정확하게 읽어보지 않아서 명확하게 이분이 어떻다 라고 얘기하기는 지금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일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민족주의 사관이고 또 하나는 이제 식민지 근대화론이거든요. 그 사이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바로 이제 반일 종족주의를 썼던 낙성대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이론들입니다. 민족주의 사원은 이건 착취다 그런 거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에 의해서 성장했다 이런 얘기입니다. 이제 두 가지가 극단적이니까 최근에는 제3의 패러다임이 나와 있어요. 그게 이제 근대성 패러다임인데 조금 이제 독자들이 좀 헷갈리죠. 근대성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제3자의 제3의 패러다임이 나와 있는데 제가 얼핏 보기에는 지금 신임 관장은 근대성 패러다임에 가깝지 않은가 그런 생각은 들어요. 이 근대성 패러다임이라는게 이런 겁니다. 한국의 성장은 한국적 요인과 일본적 요인이 섞여 있다 이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양자를 아까 두 개의 대립적인 패러다임을 절충한 건데요. 거기에 속하지 않았는가 하는 판단은 들어서 뉴라이트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게 제 생각인데 아직은 이 업적들 저서들을 좀 세밀하게 읽어봐야 정확한 판단이 있을 것 같아요.
◆박귀빈: 알겠습니다. 김경천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김경천의 시간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야 될지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송호근: 하나로 얘기하면 대의인데요. 대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의 정치적인 현실이 대의를 위한 것인가는 질문해 봐야 된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귀빈: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였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송호근: 네 감사합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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