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조정석, 우직한 이선균과 만났다…‘행복의 나라’에서의 성장기

김은형 기자 2024. 8. 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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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써니’ 제작진 다시 뭉친
하이틴 영화 ‘빅토리’ 출연해
영화 ‘행복의 나라’. 뉴 제공

‘신원호의 아이들’이 스크린에서 대결한다. 신원호 프로듀서가 연출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활약했던 배우 조정석과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을 연기했던 혜리가 각각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로 14일 관객과 만난다. ‘빅토리’가 시원한 여름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면 ‘행복의 나라’는 이열치열의 뜨거운 기운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여름 막바지 극장행 피서를 후회하지 않게 할 매력을 갖췄다.

조정석의 생활 연기가 역사를 만날 때

‘행복의 나라’는 10·26 사태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극을 바탕으로 한다.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최측근으로 상관의 결정을 묵묵히 따른 뒤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받은 박흥주(영화 속 박태주)의 짧고 강직했던 마지막 삶을 극화했다. 조정석은 10·26 변호인단의 한명으로 박태주(이선균)의 변호사 정인후를 연기했다. 박태주의 재판과정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있는 반면, 정인후가 겪는 사건들은 상상력으로 직조한 영화적 허구다.

“재판은 옳은 놈, 그른 놈 가리는 데가 아니라고요.” 영화 초반 정인후는 “이기는 놈과 지는 놈”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일종의 생계형 변호사다. 군인 신분이라 단심 재판을 받아야 하는 박태주를 변호해 형량을 줄이면 단박에 뜰 거라는 부추김을 받고 변호에 나선다. 사건의 책임에서 빼내기 위해 만들어 내는 법적 논리 앞에서 답답하리만치 군인으로서의 책임을 고집하는 박태주의 결연한 모습은 정인후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영화 ‘행복의 나라’. 뉴 제공

2019년 여름 흥행작 ‘엑시트’나 최근 개봉작 ‘파일럿’의 조정석을 떠올린다면 이렇게 묵직한 작품이 ‘조정석을 왜?’라고 질문 던질 법하다. ‘행복의 나라’의 영화적 설득력은 가벼운 조정석에서 시작된다. 10·26 사태라는, 가볍게 볼 구석이라고는 찾기 힘든 소재의 운동장에 자기 살길 찾기 바쁜 인물인 정인후를 던져놓음으로써 영화는 초반에 무게를 덜어내고 시선을 평범한 관객의 높이로 맞춘다.

이기는 데 혈안이 된 정인후는 이기는 데 관심 없는 박태주와 이기는 걸 봉쇄하려는 군부 권력과 동시에 맞서면서 각성한다. 이 과정이 뻔한 도식으로 흐르지 않는 데는 조정석의 힘 뺀 연기가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정인후가 전두환을 모델로 한 전상두(유재명)와 만나는 장면에서 ‘서울의 봄’의 황정민보다 더 건조하고 냉철한 유재명과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닌 조정석의 연기가 대비되면서 ‘행복한 나라’만의 감성적 결을 만들어낸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흥행을 이끌고 이 작품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세속적이었던 정인후가 원칙과 신념을 중시하는 박태주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설득시키는 데 조정석만한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복의 나라’는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선균의 마지막 개봉작이다. 게임판의 손쉬운 말로 권력에 이용당하는 박태주와 배우 이선균의 마지막이 겹쳐 보이는 걸 피하기 어렵다. 단단하게 영화의 중심을 잡는 박태주의 우직함은 팬들에게 보내는 이선균의 마지막 인사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빅토리’. 마인드마크 제공

혜리의 흥이 90년대 음악과 만날 때

1984년 거제고등학교에서 한국 최초의 고등학교 치어리더팀이 만들어졌다. 영화 ‘빅토리’의 상상력의 출발점이다. 무대는 요즘 레트로 인기와 맞아떨어지는 와이투케이(Y2K), 1999년으로 옮겨져 이 시대의 음악과 패션,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감성을 담았다.

춤을 좋아하는 필선(혜리)은 거제도 시골 동네를 벗어나 서울에서 댄서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절친 미나(박세완)와 춤을 제대로 출 수 있는 연습실을 찾다 서울에서 전학 온 세현(조아람)이 치어리더를 했다는 걸 알고는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빅토리’는 영화 ‘써니’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하이틴 영화다. 오합지졸 10대들이 좌충우돌을 거치며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관람 포인트는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까가 아니라 정해진 스토리보드 사이를 뚫고 나오는 캐릭터들의 활기와 웃음이다. 해맑고 철없어 보이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따뜻함을 장착한 ‘덕선’의 응용 심화 버전인 ‘필선’은 배우 혜리의 맞춤 같은 캐릭터다. 작품 특성상 자주 등장하는 칼군무 장면에서 아이돌 출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영화 ‘빅토리’. 마인드마크 제공

‘빅토리’는 청춘영화의 공식을 따라가지만 식상하지 않다. 거제도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가진 현실의 무게까지 드라마에 오롯이 담아냈기 때문이다. 필선을 홀로 키운 아버지(현봉식)는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작업반장이다. 조선소 파업 현장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필선과 친구들의 뒤로 사용자의 무리한 요구에 곤혹스러움을 겪는 필선 아버지의 얼굴이 교차하는 장면은 ‘빅토리’가 귀여운 청춘영화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는 무게감을 싣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비롯해 듀스, 디바, 김원준 등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이 대거 등장한다. 낯선 치어리더팀이 학교 대항 축구 경기장에 뜬금없이 등장했을 때 밴드 지니의 ‘뭐야 이건’이 시작되는 등 음악을 단순히 흥을 돋구는 요소 이상으로 재치 있게 배치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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