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 전 밤 밝힌 환등기 불빛에, 남녀노소 입이 쫙 벌어졌다

노형석 기자 2024. 8. 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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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오틸리엔수도원 소장 100년 전 찍은 조선사진들, 디지털 복원
1911년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서 열린 수도회 신부들의 환등기 시사회 장면. 사진 아래 왼쪽부터 베버 총아빠스, 플라치도 포겔 원장 신부, 니콜라스 조세프 빌렘 신부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 주위로 모여든 신도, 주민들이 놀란 표정으로 환등기 영상을 쳐다보고 있다. 처음 발굴된 사진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밤을 밝히는 환등기 불빛에 남녀노소 주민들은 입을 쩍벌렸다.

1911년 어느 날 밤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서 열린 서양 신부들의 환등기 시사회 장면이다. 마치 어젯밤 찍은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옛 사진들 속에서 백여년 전 과거가 2024년 현재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을 찾은 독일 신부들이 당시 사람들과 문화유산 등을 찍은 사진 꾸러미들이 21세기 디지털기술로 복원됐다. 사진들 가운데 우선 도드라지는 건 세부가 명확하게 드러난 건축 미술유산들의 풍경이다. 1911년 당시 세 아이가 걸터앉은 채 지켜보는 북녘 황해도 해주 신광사 5층 석탑과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초가집 붙은 서울 동북쪽 관문 혜화문이 눈길을 끈다.

안중근 의사의 형제들과 니콜라 빌렘 신부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발굴됐다. 신부 옆에 앉은 이가 안정근(1885-1949), 그 바로 뒤에 서 있는 이는 안공근(1889-?)이다. 왼쪽에 일본 전통옷을 입고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촬영 시기는 미상. 빌렘 신부는 안 의사의 유년시절 영적인 스승으로 안 의사가 최후를 맞기 전 마지막 고해성사를 집전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1915년 서울 명동성당 제단엔 닫집과 소용돌이 계단 딸린 목제 강론대가 보이고 그해 경기도 안성 석남사 대웅전에는 지금은 사라진 ‘관음보살도’ ‘신중도’ ‘현왕도’ 불화가 내걸렸고 청년풍 불상도 자리하고 있었다.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형제들이 꼿꼿하게 카메라 앞에 선 장면과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주민들이 환등기 영상을 보고 놀라는 장면들도 들어있다.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찍은 옛 혜화문. 일제가 1928년 철거했고, 1994년 서울시가 원위치 북쪽에 복원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이 사진들을 소장한 곳은 1909년 조선에 성 베네딕도회 신부들을 선교사로 파견했던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은 한국 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와 지난 2021~2022년 이 수도원이 소장한 20세기 초 조선 관련 사진 1847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최근 성과를 담은 도록 형태 보고서를 발간하고 수록 사진들을 12일 언론에 공개했다.

재단과 연구소 쪽은 수도원 아카이브에 한국 관련 자료로 분류된 유리건판, 랜턴 슬라이드, 셀룰로이드 필름 등 2077점을 전수조사한 끝에 한국과 관련 없는 것으로 판명된 사진을 제외한 1874점의 정보를 추려 보고서에 실었다. 이들 가운데 118점은 주제별로 분류해 도판과 해설을 곁들여 소개했고 나머지는 도판을 작게 압축된 이미지로 넣었다.

1915년 찍은 서울 명동성당 강론대. 베네딕도회가 설립한 숭공학교 학생들이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1854-1933) 조선교구 주교의 서품 25주년 선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닫집인 천개는 제대 왼쪽 기둥으로 옮겨졌고, 강대는 명동성당 제대와 혜화동성당 독서대가 됐다. 오름계단은 왜관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실린 사진들은 당시의 선교활동 모습을 비롯해 교육 현장, 민속, 복식, 불교 유산, 건축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근대 성당건축물과 안성 석남사와 해주 신광사, 금강산 고찰 등을 비롯한 불교유산들, 니콜라스 조세프 빌렘 신부가 안중근 형제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선교사들이 운영한 숭공학교 목공부 단체사진, 북한산성 산영루, 혜화문 등 변하거나 사라져 간 문화유산의 원래 모습, 장옷 등 한복을 입고 있는 당시 남녀노소 조선인 선조들의 인상을 살펴볼 수 있다.

신부들이 조선에서 찍은 사진들은 앞서 수도원 수장인 총아빠스 직위에 있던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가 1915년 펴낸 조선 견문기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상당 부분이 실렸고, 2014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와 함께 도록도 펴낸 바 있다.

이번 보고서에 실린 사진들은 베버의 책에 실린 인화본 사진들이 아니라 수도원에 소장된 유리건판, 오토크롬 원판, 필름 등의 원본을 디지털 촬영한 것들이다. 안중근 형제들의 사진과 청계동 주민들의 환등기 상영회 등의 미공개사진들이 상당수 발굴됐고, 이미 알려진 사진들도 표면에 묻은 먼지, 잡티 등을 걷어내고 화면의 선명도를 최대한 높인 까닭에 기존 인화사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도상을 살필 수 있다.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1년 5월14일 해주 신광사를 답사하면서 찍은 절 경내의 5층 석탑과 주위의 아이들. 컬러로 찍은 신광사 탑 사진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일례로, 안성 석남사 대웅전의 경우 인화본 사진에서는 확인하기 힘들었던 불화들의 세부 사진은 물론 들보의 옛 단청 무늬와 ‘왕비 전하’라는 문구까지 확인돼 주목된다.

수도원 수장인 총아빠스 직위에 있던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1∙1925년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 최신 기술 ‘오토크롬(Autochrom)’을 써서 촬영한 천연색 투명 사진들 또한 한국 사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물들이다. 1903년 특허를 받아 1907년 상용화됐으며 컬러 필름이 출시된 1932년 이전까지 활용된, 유리판을 지지체로 쓰는 천연사진 기술이다. 이 오토크롬 사진들은 베버 신부의 책에 25장이 소개됐으나 재단 쪽은 수도원 아카이브를 뒤져 신부가 찍은 오토크롬 사진 44장 전체를 디지털촬영해 보고서에 실었다.

노르베르트 베버의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에 실린 내용과 인화사진을 통해 1911년 4월20일 경기도 안성 석남사를 찾아가 찍은 것으로 확인된 사진이다. 이번 조사에서 유리건판 원본을 디지털촬영하고 보정해 원래의 이미지를 최대한 선명하게 되살려냈다. 불상의 뒤쪽에 내걸린 후불도만 현재 경기 용주사 효행박물관에 소장된 ‘아미타회상도’(1827년)란 사실이 확인될 뿐 불단에 봉안된 삼존불상과 업경대(業鏡臺), 측면벽에 내걸린 관음상과 신중상 등의 불화는 현재 사라졌다. 천장 아래 들보에서도 사라진 옛 단청이 확인되는데 그 안에 ‘왕비전하’란 문구도 보인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천연색 사진을 통해 원래 색을 알 수 있으며 같은 주제의 사진을 흑백 유리건판, 컬러채색본인 랜턴 슬라이드, 오토크롬, 필름 등의 여러 방식으로 제작한 예들까지 비교하며 차이를 파악할 수 있게 한 점 등도 성과다. 재단의 김동현 실태조사부장은 “13일부터 재단 누리집에 조사한 사진들을 모두 공개할 예정”이라며 “종교사, 민속사, 복식사, 예술사와 연관되는 20세기 초 풍물, 풍습 등의 장면과 문화유산 공간을 정교하게 되살려낸 결과물이어서 관련 분야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단 쪽은 12일 오후 서울 장충동 성 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에서 조사성과 공개 행사를 열고 김 이사장이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아연합회의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재 아빠스에게 손수 보고서를 전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1925년 조선을 다시 찾은 베버 총아빠스가 출사를 앞두고 카메라에 유리건판(필름)을 갈아 끼우려고 준비하 장면. 옆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바라보고 있고, 그들 뒤에 카메라 삼각대도 보인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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