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인생은 증명의 연속… 본의 아니게 이번에는 KIA 리드오프, 마지막 산 넘을까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처음에는 1군에서 뛸 레벨이 아니라고 했다. 체구도 작았고, 데뷔 시즌 17경기 타율은 0.091에 불과했다. 첫 3년 타율은 2할이 안 됐다. 악착 같이 버티며 수비와 주루에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렇게 1군 한 자리를 차지할 선수가 되니 이번에는 1군에서 주전으로 뛸 레벨이 아니라고 했다.
제대 이후인 2019년부터 팀의 주전으로 나섰다. 뛰어난 수비력,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 그리고 주력이 돋보였다. 때로는 환호를 받다, 때로는 비난을 받으며 좌충우돌하다 2022년부터 타격도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2022년 130경기서 타율 0.272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130경기에서 타율 0.301을 기록했다. 규정타석 3할을 친 선수가 됐다. 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모든 논란에는 종지부가 찍히는 듯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박찬호를 둘러싼 논쟁은 이어졌다. 스스로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취임한 이범호 KIA 신임 감독은 이전과 다른 타순 구상을 짰다. 박찬호 최원준 김도영이라는 총알탄 사나이들을 붙여놓고 싶었다. 1~3번 타순에 배치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리드오프 박찬호’가 난데 없이 시험대에 올랐다.
발이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1번을 못할 것은 없었다. 이전에도 1번 경험이 제법 있었다. 타격 능력이 올라오기 시작한 2022년부터였다. 2022년 개인별 타순에서는 가장 많은 340타수를 1번에서 소화했다. 2023년에는 154타수를 1번으로 들어섰다. 2번(128타수), 9번(157타수)과 비슷했다. 하지만 누구도 ‘박찬호 풀타임 리드오프’를 주장하며 시즌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범호 감독의 구상은 그래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타율이 높고 발로 언제든지 단타를 2루타로 둔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인정했다. 1번이 장타력과 밀접하게 연관된 타순도 아니었다. 그러나 리드오프의 가장 큰 덕목인 출루율에서 인정받는 타자가 아니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일단 나가면 대단히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얼마나 나갈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2022년 박찬호의 출루율은 0.344, 2023년은 0.356으로 순출루율(출루율-타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여기에 체력적인 부담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박찬호의 포지션은 유격수다.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포지션 중 하나다. 또 자주 뛰는 유형의 선수다. 역시 에너지 소비가 많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서는 리드오프에서 오히려 박찬호의 개인적 가치만 깎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중간 점검을 하면 어떨까. 아직은 회의적인 시선이 거둬지지 않는다. 이범호 감독이 상황에 따라 구상을 조금씩 수정하기는 했으나 박찬호는 올해 241타수를 1번에서 나갔다. 이미 지난해 1번 소화 타수를 초과했다. 12일 현재 시즌 101경기에서 타율 0.303을 기록 중이다. 타율은 2년 연속 3할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좋다. 그런데 출루율은 0.355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출루율이 높은 수준은 아니다. 올해 리그의 타고 성향을 고려하면 뒷걸음질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박찬호는 출루율을 높이며 리드오프에 더 적합한 선수가 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단기간에 쉽게 될 문제는 아니다. 올해 박찬호의 리드오프 성적은 타율 0.286, 출루율 0.323으로 오히려 자신의 시즌 평균보다 떨어진다. 같은 성적이라도 그냥 9번에 있다면 크게 도드라지지 않을 문제인데, 괜히 1번에 가 비판을 받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 구상을 접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감독은 박찬호의 리드오프 출루율이 0.360 이상만 되어도 다른 부분과 엮어 가치가 있다고 본다.
힘든 상황이지만 어쩌면 경력의 마지막 증명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유격수를 보면서 1번을 볼 만큼의 출루율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리그 최정상급 유격수이자,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유격수임을 상징한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이 얼마 남지 않은 개인적으로도 욕심을 내볼 만한 사안이다. 9번 유격수와 1번 유격수의 가격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지금은 다소 멀어 보이는 목표지만, 지금까지 시차를 두고 목표를 하나하나씩 점령했던 박찬호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도 높이고, 팀의 구상에도 탄력을 붙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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