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대 6’ 프로야구 경기 결과가 기후변화 참사라고요?
혹서기에 아이들을 납치해 비밀리에 가르치는 ‘어린이 야구 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한여름 가장 더울 때인 오후 2시부터, 비오는 날에는 히터를 틀고 실내체육관에서 연습한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한다는데,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제보자 '베이스볼 대디'
“저게 말이 되는 점수입니까? 핸드볼 경기도 아니고…”
전국이 열대야로 신음하던 7월 말의 밤이었죠.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제보가 온 줄도 모르고,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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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타이거즈는 지리산베어스를 광주 구장으로 불러들여 참혹한 패배를 당하고 있었어요. 홈런, 홈런, 홈런… 투수를 바꿔 봐도 안타, 안타, 안타… 더위에 지친 타이거즈의 투수들은 도무지 아웃 하나를 잡지 못했어요.
투수 자원이 바닥 난 타이거즈는 결국 9회에는 9번째 투수로 외야수를 마운드에 올렸어요. 베어스 선수들도 경기를 끝내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는지 삼자범퇴로 물러났죠.
“동네 야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창피람!”
타이거즈의 팬인 홈스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이날 최종 스코어는 30 대 6.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다 득점 경기 신기록이었죠.
베어스 팬인 왓슨 요원은 홈스 반장을 놀렸어요.
“타이거즈가 6:30으로 졌네요. 내일 경기가 6시30분에 열리는 걸 알려주는 고도의 마케팅인가 봐요.”
그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어요.
“여보세요?”
“말도 안 되는 스코어로 끝난 이번 경기 보셨지요? 기후변화가 부른 참사입니다. 요즈음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지더군요. 앞으로 우리는 야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미국 뉴욕에 사는 베이브 루스 3세입니다. 한번 놀러 오시오. 내 이론을 설명해 드리오리다.”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
베이브 루스 3세의 사무실은 미국 뉴욕의 역사적인 야구장 양키 스타디움 앞 골목에 있었어요. 묵은 때가 낀 배트와 닳아서 떨어진 글러브가 벽에 걸려 있었죠. 거기 백발의 노인이 돋보기로 야구 통계표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내가 바로 이 시대 최고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손자일세. 단타 위주의 소꿉장난 같은 데드볼 시대에서 장타 위주의 스케일 큰 라이브볼 야구 시대를 연 게 바로 우리 할아버지였지.”
“아, 베이브 루스 이전에는 타자들이 데드볼(몸에 맞는 공)을 많이 맞았나요?”
“허허, 이런. 야구에 대해 모르는구먼.”
야구의 역사를 잠깐 살펴볼게요.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1920년대 전까지만 해도 번트와 안타 그리고 다양한 작전으로 한 점씩 점수를 내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펜스도 지금보다 훨씬 멀어 홈런은 가물에 콩 나듯 했죠. 그러다 보니 재미가 없었어요. 좀 더 공격적인 야구로 바꾸기 위해 공의 내부 소재를 고무에서 코르크로 바꿔요. 공을 바꾸자마자 타자들이 빵빵 치면 공은 휭휭 날아갔어요. 2루타와 홈런이 훨씬 많아졌어요. 기존의 공을 데드볼이라고, 새로운 공을 라이브볼이라고 불러요. 그렇게 홈런과 장타가 나오는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돼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왓슨이 물었어요.
“그런데, 30:6 경기가 왜 기후변화의 참사라는 거죠?”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친다고 합시다. 그때 그 공이 홈런이 될지, 플라이 아웃이 될지는 물리학적으로 두 가지 영향을 받아요. 하나는 공의 탄성력, 다른 하나는 대기라는 매질이요. 그런데 대기 온도가 오르면 공기의 밀도가 낮아집니다. 밀도가 낮아진 공기에서는? 공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겠죠. 지구온난화 시대에는 홈런이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자, 이 그래프를 보시오.”
그가 책상에 두툼한 종이 뭉치를 던졌어요. 세 개의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죠. 홈스와 왓슨이 눈을 크게 떴어요.
“왼쪽의 그래프가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당 홈런 개수, 가운데 그래프는 야구장의 대기 온도, 오른쪽 그래프는 야구장의 공기 밀도를 보여주는 선이오. 뭔가 잡히는 게 없소?”
홈스가 놀랐다는 듯 답했어요.
“1980년대부터 대기 온도가 상승했는데, 덩달아 경기당 홈런 개수도 늘어나는군요. 반면 공기 밀도는 떨어지고요.”
베이브 루스 3세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맞소. 1980년 이후 10만 경기, 24만 개의 타구를 분석하여 만든 위대한 그래프라오. 특히, 2015년 이후의 홈런 급증세가 더 눈에 띄지.”
왓슨이 반론을 폈어요.
“예전에 메이저리그 선수들 약물 파동도 있었고요, 선수의 기량이나 경기 분석 기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다른 조건을 통제하고 이 그래프를 얻은 것이오. 돔구장이 아닌 야외 구장에서 하루 최고기온이 1도 상승하면, 홈런 수가 1.95% 늘어난다오. 가장 뜨거운 오후에 경기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돼 2.4%나 늘어나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58개의 홈런이 추가로 나왔소.”
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앞으로 극단적인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겠군요.”
“하하하, 할아버지가 라이브볼 시대를 열고, 이 손주님께서 ‘익스트림 라이브볼 시대’를 예견한다고 할 수 있겠지.”
손주님께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홈런 증가 개수도 예측했습니다.
현재처럼 세계가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어 많은 화석연료 사용과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을 확대할 경우(SSP5-RCP8.5 시나리오)의 홈런은 2050년에는 연간 192개, 2100년에는 467개가 추가 발생합니다. 반면, 재생에너지 기술 발달로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경우(SSP1-RCP2.6 시나리오)에는 홈런 증가량을 2100년 130개까지 제한할 수 있죠. 지구온난화는 베이비 루스 시대의 홈런 급증을 뛰어넘는 새로운 홈런 급증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3세가 말을 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타이거즈와 베어스의 6시 30분 경기는 나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소.”
“시간이 아니라 스코어입니다. 박사님.”
타이거즈 팬인 홈스가 베이브 루스 3세를 째려보며 말했어요.
폭염이 투수에 미치는 영향
“흠흠. 맞아. 그렇지. 타이거즈는 꽤 지친 상황이었소. 다른 팀들은 우천 연기로 한두 경기라도 쉬었는데, 그런 운도 따라주지 않은 거지. 특히, 매일 혹은 하루걸러 마운드에 서야 하는 구원투수진들은 폭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오. 일반적으로 장기 리그에서 더운 날씨는 투수에게 불리해요.”
그때 텔레비전에서 키큰 히어로즈 감독의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히어로즈는 실내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폭염 스트레스와는 관계가 먼 팀이었죠. 그는 타이거즈가 측은했는지, 문제의 6시30분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실내 돔구장에서 3연전을 마치고 다음 경기를 야외 구장에서 하면 선수들이 두 배나 힘들어합니다. 아마 타이거즈가 우리와 쾌적한 돔구장에서 경기하고 바로 야외 구장에서 베이스와 경기해서 힘들었을 겁니다. 날씨가 경기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기후변화가 안 건드리는 데가 없군.”
홈스 반장이 말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 모르는 사이 일상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거예요.
*8월19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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