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완투의 전설’ 윤학길과 그의 딸 윤지수가 건넨 따스한 기억들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12일 폐막식을 끝으로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감동과 환희, 영광과 좌절, 기쁨과 아픔의 순간들이 교차하고 명멸한 시간은 이제 우리네 기억의 저장고로 들어갔다. 수식과 미화는 접어놓고,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오염된 파리의 센강에서 ‘어쩔 수 없이’ 헤엄쳐야 했던 선수들과 그 강에서 빠져나온 뒤 심지어 구토하는 선수의 모습이 가슴 시린 장면으로 남아 있다.
센강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 지난 사랑을/ 또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고통을 지나 왔었지”라고 읊었던 그 아름다운 강이 아니었다. (인용은 황현산 옮김 『아뽈리네르』 에서)
프랑스 당국의 수질 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계화면으로 그야말로 ‘녹조라떼’가 된 센강의 구정물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선수들이 강물에 뛰어들 때면, 마치 내 몸이 그 구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켜 소름이 절로 돋았다.
대회가 끝나면 ‘이야기’가 남는다. 으레 그랬듯이, 파리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낸 우리 선수들 위주로 시선이 집중됐으나 삽화처럼 새겨진 훈훈한 미담이 가슴을 적셨다. 여자펜싱 사브르 단체 종목에서 도쿄 올림픽(동메달)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건 팀 맏언니 윤지수(31)가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후배인 전은혜에게 출전을 양보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결승 때는 후배들이 경험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해 아예 출전을 마다했다는 기사는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윤지수를 얘기하노라면 자연스레 그의 아버지인 윤학길(63) KBO 재능기부위원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995년, 예전에 일했던 신문사의 후배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외동딸을 남겨두고. 신문사 동료들이 어린 딸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교육비를 모금했다. 그 무렵, 어떻게 알았는지 윤학길(당시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 당시로는 거금인 일백만 원을 보내왔다. 물론 작고한 그 후배가 윤학길의 대학 선배이자 롯데 담당 기자였다는 인연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로선 자못 뜻밖의 일이었다. 그 고마움을 여태껏 잊을 수 없다.
윤학길 위원은 한국프로야구판의 전설적인 존재다. 1986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듬해부터 1993년까지 그는 해마다 두 자릿수 완투(1990년에는 5 완투)를 기록했고, 1997년에 은퇴할 때까지 쌓아 올린 ‘100 완투’는 말 그대로 전설이다. 개인 통산 117승(14구원승, 94패 10세이브) 가운데 완봉승도 20개나 된다.
완투는 근년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 아주 희귀한 사례가 돼버렸다. 올 시즌 완투승은 KIA의 양현종이 두 차례(5월 1일 KT, 7월 23일 NC전), 롯데 외국인 투수 윌커슨(6월 4일 KIA전 완봉승)이 한 번 성공시킨 것밖에 없었다. 무피안타 무득점(노히트노런) 경기는 2000년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5월 18일, 해태 타이거즈전) 이후 국내 투수는 명맥이 끊겼다.
1992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이기도 했던 윤학길 위원은 작금의 ‘완투실종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본만 하더라도 완투승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요즘 배트도 좋아진 데다 공의 탄력 때문에 투수들이 힘들어한다. 외국인 타자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말도 들린다(웃음)”면서 “투수 분업화 영향도 있겠으나 (선발 투수들이) 너무 스피드 위주로 마냥 세게만 던지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또 공 100개를 넘기면 벤치가 불안해하는데 어떻게 공을 던지겠나”
윤 위원은 “제 나름대로 생각인데, 스피드가 떨어지더라도 컨트롤이 좋아야 한다. (선)동렬이나 (최)동원이 형은 공도 빠르고 컨트롤도 좋은 특이한 경우지만, 나는 공 빠르기가 144km 정도였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던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7회 정도 되면 (스피드가) 떨어져 제구력으로 버텼다”고 돌아봤다.
100 완투를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윤 위원은 의외로 ‘공 안 던지기’를 들었다.
그는 “물론 완투 후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내 경우는 완투한 이튿날에는 아예 공을 잡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만 가볍게 했다. (최)동원이 형은 롱 토스와 달리기로 몸을 풀었다. 그런 점에서 나하고는 방법이 달랐다.”면서 “투수는 러닝이 생명이다. 러닝을 중시하는 것은 같았으나 나는 웨이트에 치중했고 동원이 형은 롱 토스를 너무 많이 던졌다. 내가 ‘그러면 어깨가 빨리 간다’고 얘기하면, (최동원은) 그래야 팔에 힘이 생긴다고 그렇게 계속했다. 결과로는 단명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완투의 실종은 곧 야구의 묘미 한 가지가 사라진 것과 같다. 선발 투수의 완투능력 부족은 지도자들이 투수진 운용을 너무 잘게 썰어서 하는 행태와도 무관치 않다.
“투수 분업화가 됐지만, 우리 때는 홀드 같은 거 없었다. 선발로 나서면 4, 5일은 쉬는데 요즘에는 너무 공 개수(조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게 아닐까.”하는 그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윤학길 위원은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노히트노런보다 1안타 무사사구 완봉을 더 쳐줘야 한다고 본다. 볼넷을 안 내주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투수가 타자를 상대해야지, 툭하면 걸리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도 볼넷으로 내보내면 그 게 무슨 투수냐. 핸드볼도 아니고.”
부산 해운대 좌동에서 살고 있는 ‘완투의 전설’은 “펜싱 단체전의 선수 기용이 야구의 선발, 중간, 마무리 투수 기용과 엇비슷해 재미있었다”며 슬며시 딸의 운동 종목을 자랑스러워했다. 부정(父情)은 감출 수 없었다.
글/ 홍윤표 OSEN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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