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현장] 김판곤 감독의 처용전사 부름에 학생처럼 "네!", 모처럼 훈훈했던 문수의 밤

김태석 기자 2024. 8. 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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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울산)

대구 FC전 승리를 통해 데뷔전을 훌륭하게 장식한 김판곤 울산 HD FC 감독이 팬들에게 처음에게 건넨 말은 바로 팬들의 이름이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비칠 수 있으나, 지난 수년 간 항상 그래왔던 그의 인터뷰 스킬을 떠올리면 듣는 팬들을 기쁘게 하는 그의 인터뷰 스킬은 K리그에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김 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지난 10일 저녁 7시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벌어졌던 하나은행 K리그1 2024 26라운드 대구전에서 전반 30분에 터진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한 바 있다.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물론 새 사령탑이 된 김 감독을 바라보는 울산 팬들 모두가 꽤나 긴장했을 경기였을 것이다. "27년차 감독"임을 자처하며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점을 어필한 김 감독이지만 그래도 K리그에서는 정식 감독으로서 처음 검증 무대에 서는 경기였기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팬들 역시 K리그에서는 뭔가 보여주지 못한 김 감독을 향한 기대감과 의구심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다소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래도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건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이었다. 김 감독은 경기 직후 울산 서포터스인 처용전사를 향해 "응원받고 싶었다. 너무 감사하다. 조금 어렵게 이겼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득점으로. 더 좋은 경기력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항상 모든 경기를 페스티벌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인삿말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처용전사의 서포터즈 명칭을 두 번이나 부르며 팬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았던 장면이었다. 팬들이 "네"라고 외치는 모습이 선생님의 부름에 학생들이 반응하는 듯한 느낌을 줘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김 감독의 팬 대응 자세는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랬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 사령탑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베스트 일레븐>과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말레이시아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놀랍게도 서포터즈를 꼽았다.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다른 대표팀과 달리 특이하게도 울트라스 성향을 가진 조직된 광적인 서포터즈 문화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울트라스 말라야'라는 대형 걸개를 걸어두고 검은색 셔츠를 입으며 엄청나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이 서포터즈 그룹을 언급하며, 과거 홍콩 감독 시절 말레이시아 원정을 왔을 때 적으로 상대하면서 정말 이런 응원을 받으며 경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응원에 감사하다는 듯 그는 재임기간 내내 첫 마디에 울트라스 말라야를 언급했고, 떠날 때 가진 사임 기자회견에서도 수차례 그들을 언급했다.

김 감독은 열광적인 스탠드 분위기가 경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굉장히 신경 쓰는 지도자이며, 실제 울산을 선택했을 때도 부쩍 늘어난 울산 팬덤이 그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도 "처용전사의 좋은 응원을 받고 싶었다"라며 "잘가세요라는 응원가가 좀 더 빨리 나올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라고 재치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오랜만에 경기에서 이겨서 팬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라며 "와서 보니 울산의 팬 문화가 상당히 좋은 것 같다. 팬들과 팀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좋은 관계라는 게 결국은 좋은 경기를 보여주며 지속적으로 이기는 게 아니겠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잘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날 대구전에서 김 감독이 남긴 말 중 시선을 끄는 대목은 또 있다. 김 감독은 본인이 사상 첫 울산 선수 출신 울산 감독이 된 것에 매우 큰 의미를 뒀다. 김 감독은 "이 팀에서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도 제가 이 팀의 선수 출신 첫 감독이라는 것이 영광스럽다"라고 말했다.

기쁨보다는 아픔이 많았던 울산 선수 김판곤의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두 번째 시즌까지 좋았었는데 세 번째 시즌 앞두고 전지훈련 때 다리가 완전히 두동강이 나서 일곱 번의 수술을 했다. 결국 떠날 때 아쉬움이 많았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도 팀은 앞으로 나아갔고, 이런 문화들도 함께 성장하며 좋은 클럽이 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자신과 울산의 인연이 끊긴 28년 동안 울산이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빅 클럽이 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단은 성공적인 K리그 데뷔를 한 듯한 분위기다. 열정적인 경기 중 리액션이 팬들에게서 소소히 화제가 되는 것도 꽤 흥미롭다. 일단은 환영받는 분위기에서 시작한 김 감독의 K리그 커리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울산 HD FC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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