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호소 "가정부 아닌 '돌봄 도우미'예요"
"최저임금보다 문화 관심 많아 한국행"
"번 돈 3분의 1 이상 가족에게 보낼 것"
“가정에 배치돼 출산을 앞둔 산모 또는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 처음 도입되는 필리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 참여자로 선발된 메리(가명)에게 ‘예상 업무’를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또 다른 참여자 벨(가명) 역시 “주된 업무는 돌봄이고, 집안일은 (돌봄과) 관련되거나 필요한 경우 ‘도와주는(assist)’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음식을 만들거나 집을 청소하는 등 한국에서 통용되던 ‘가사노동자’의 모습이나 역할과 다소 차이가 있다. 향후 업무 범위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6월 21일 최종 선발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중 10여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부는 거절했고, 당초 인터뷰에 응했던 이들이 채용 취소 가능성을 이유로 대화를 돌연 중단하기도 했다. 메리와 벨 역시 인터뷰 이후 “개별 인터뷰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기가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얻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가사관리자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인 지난달 중순과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이뤄졌다.
육아 연관 업무 범위 논란 일 듯
지난 6일 한국 땅을 밟은 20·30대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현재 경기 용인시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다음 달부터 서울 각 가정에 파견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모호한 업무 범위를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고용노동부와 필리핀 이주노동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본 업무는 '돌봄'이다. 아이 옷 입히기, 목욕시키기, 이유식 조리, 임신부를 위한 식사 준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메리와 벨처럼 참여자들도 본인들의 주 업무를 이같이 인지하고 있었다.
돌봄 외에 다른 업무도 일부 할 수 있다. ‘6시간 이상 서비스’의 경우 어른 옷 세탁과 건조, 어른 식기 설거지, 청소기·마대걸레로 바닥 청소 등이 가능하다. 쓰레기 배출, 어른 음식 조리, 손걸레질, 수납 정리 등은 할 수 없게 돼 있다.
육아 관련 범위에서 동거 가족에 대한 가사 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원칙이지만, 어디까지를 육아 연관 업무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일 수 있다. 현지에서 온 이들의 의견도 다소 엇갈린다. 메리는 “모든 업무를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을 것 같다”며 “(가사 노동도) 괜찮다. 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벨은 “업무 지시를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가정부가 아닌 돌봄 도우미(Care giver·케어기버)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현지 정부가 공인한 케어기버 자격증(780시간 이상 교육 이수) 소지자 가운데 영어·한국어 등 어학 능력 평가, 범죄 이력 확인 등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선발됐다.
"한국행은 가족 위한 선택"
두 사람이 먼 한국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메리는 “한 회사에서 일하며 매달 2만2,000페소(약 52만 원)를 벌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퇴근 후 ‘투잡’을 뛰면서 월 40만 원 넘는 부수입도 얻었다.
필리핀 월평균 임금이 1만8,423페소(약 44만 원·2022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랄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결국 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해외 노동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가족이 그립겠지만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와 편안한 삶을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벨 역시 교육업에 종사하며 밤낮으로 일해 월 3만 페소(약 71만 원)를 벌었지만 다수의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았다. 보다 많은 임금을 얻기 위해 돌봄 자격증을 따고 해외 취업에 나섰다.
목표는 한국에서 번 돈의 3분의 1 이상을 필리핀 가족에게 송금하기다. 벨은 “한국에서의 월급이 약 200만 원이라고 들었다. 최소 근무는 주당 30시간이라지만 더 오래 일해도 상관없다. 가능한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내국인과 똑같은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올해 임금(9,860원) 기준으로 하루 4시간(주 5일) 일할 경우 월 119만 원, 8시간 기준으로는 238만 원을 쥐게 된다. 월 50만~80만 원을 주는 싱가포르, 홍콩보다 많이 받게 된다.
‘최저임금 정책이 한국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느냐’는 물음에 메리는 “(한국이) 최저임금을 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한국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지원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단기적으로는 좋은 고용주를 만나는 것, 장기적으로는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과 즐거운 기억을 안고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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