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AI가 일할 때 사람은 쉬어야 할까"…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20일 개관
서울 도봉구 창동역 근처에는 주변과 이질감이 드는 독보적인 외관을 가진 건축물이 있다. 돔 형태의 이 건축물은 20일 개관하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RAIM)이다. 유선형을 이용한 추상적인 형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내부로 들어와 3층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얼굴의 로봇이 등장한다. ‘메타 휴머노이드 마스크봇’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성형 인공지능(AI) 로봇이다.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고 자연어를 처리하며 얼굴과 표정이 닮도록 인격화했지만 몸 없이 얼굴만 덩그라니 놓인 로봇은 ‘불쾌한 골짜기’의 일종이었다.
RAIM의 외관에서 내부 전시물까지 둘러보는 동안 흥미롭지만 다소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면 과학관이 설립된 의도가 전달된 셈이다. 로봇과 AI에 친숙해지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지 관람객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도록 구성됐기 때문이다.
유전자 교정이나 합성 생물학 등 바이오 기술, 풍력이나 수소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첨단테크가 존재하지만 지금 이 시점 로봇과 AI만을 테마로 한 과학관이 생긴 목적이 있다.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과 AI가 인간의 육체(로봇)와 정신(AI)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공생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로봇과 AI는 인간의 삶이나 사회에 파급력이 매우 큰 기술입니다. 이런 기술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친근해져야 우리가 보다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RAIM이 설립됐습니다.”
이진원 RAIM 관장은 과학관 설립 이유를 이처럼 밝혔다. 로봇과 AI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위험하고 힘든 환경에서 일하지 않게 된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분야 역시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대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안전하고 즐거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로봇과 AI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RAIM은 첨단테크를 관람하고 체험하는 곳을 넘어 윤리적인 문제를 짚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로봇과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우선 첫 기획 전시로 ‘온 앤 오프: 일하는 로봇, 그리고 사람’이라는 테마를 마련했다. 온 앤 오프(ON & OFF)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로봇과 AI를 작동시키려면 전기를 켜고 꺼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로봇 및 AI가 작동(on)하면 사람은 일을 쉰다는(off) 뜻을 담았다.
온 앤 오프 전시관에는 4족 보행을 하는 로봇들이 있다. 동물의 다리를 모방해 설계한 4개의 다리가 있으며 3D 라이다 센서, 열화상 카메라 등 센서가 탑재돼 있어 불규칙한 지형이나 장애물을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기동성과 안정성을 토대로 시설물을 점검하거나 물건을 운반하는 등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고 소방로봇이나 경찰로봇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부족한 근력을 보완해주는 웨어러블 로봇도 착용해볼 수 있도록 전시돼있다. 근력을 늘리는 외골격 메커니즘 기술을 이용해 장애가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돕거나 반복 작업이 많은 노동자의 피로를 개선할 수 있다.
물건을 스캔해 형태와 크기별로 분류하는 물류 로봇, 의료용 소프트웨어와 로봇팔 기술이 적용된 약사 로봇,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간호·돌봄 로봇,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해 위험을 감지하고 알리는 AI 관제실 등도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체험관이다.
로봇과 AI가 ‘온’이 되면 인간의 편의성은 커지겠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회성과 대인관계, 실업률이나 소득 불평등에 미칠 영향 등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RAIM은 로봇 및 AI와 결부된 윤리적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했다. 스크린에 등장한 상황에 따라 핸들을 돌리는 체험을 하며 ‘트롤리 딜레마’를 생각해보도록 만든 공간이 대표적이다.
트롤리 딜레마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 멈출 수 없는 차량을 몰고 있을 때 운전자가 어떤 윤리적 선택을 할지 판단하도록 하는 사고실험이다. 핸들을 붙잡은 관람객은 스크린에 등장한 사람을 보고 핸들을 좌측 또는 우측으로 틀어야 한다. 가령 왼쪽에 노인 1명, 오른쪽에 어린이 2명이 있을 때 어느 쪽으로 핸들을 틀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 같은 윤리적 딜레마는 로봇과 AI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더욱 중대한 윤리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AI 알고리즘이 특정한 인종과 성별에 유리한 편향 학습을 했다면 자율주행 시 AI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의 사고 책임은 제조사, 프로그래머, 운전자 등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 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에 대한 고민 등도 필요하다.
과학관에는 AI 판사가 인간 판사보다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묻는 패널도 걸려있다. 챗봇이 차별적 혹은 폭력적인 발언을 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과연 AI가 사람보다 공정한 존재인지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로봇 및 AI와의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과 연관이 있다. 과학관에는 로봇 팔이 싱잉볼을 연주하는 동안 AI가 인간의 질문에 답해주는 명상 공간이 있다. AI 로봇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그림, 음악, 글쓰기 등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 영역에도 로봇 및 AI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의 공존이 미칠 영향을 지속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관장은 “로봇과 AI는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기술들이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과학관에서는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면서 동시에 로봇과 AI는 ‘온’이 되고 사람은 ‘오프’가 됐을 때 사람은 단순히 쉬고 놀 것인지, 또 다른 활동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로봇과 AI가 만드는 세상을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양극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 수도 있다”며 “과학관 내 체험 시설과 패널 등이 다양한 고민을 해보는 발상의 시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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