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유튜버들이 앞다퉈 책 내는 이유

조지윤 기자 2024. 8.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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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짜리 영상으로도 수십만, 수백만의 조회수를 빚어내는 유튜버들이 하나둘 출판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영상 언어로 말하는 그들이 활자로 한 번 더 이야기를 전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3%를 기록했다.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 매년 최저치를 기록하는 성인 독서율과 함께 출판업계의 불황도 깊어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23년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업계의 총영업이익은 11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4% 감소했다.

1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쓴 레시피 북 '박막례시피’
2 유튜브 채널 '꼰대희’를 운영하는 개그맨 김대희
3 유튜브 채널 '방가네’를 운영하는 방효선, 방효진, 방미르 삼남매
4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이 발간한 '홍보의 신’

모순적이게도 출판시장을 견인하는 것은 영상매체의 인기에 힘입은 책들이다. 출판업계에선 독서 인플루언서와 북튜버(책 유튜버)들의 추천이 도서 판매량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내다본다. 나아가 책과 관련 없는 주제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틱토커 등 영상 크리에이터가 직접 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권을 꿰차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에세이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서 유명인의 에세이가 일곱 권을 차지했다. 명사·연예인 에세이 판매량도 전년 대비 21.4% 증가했다. 구독자 150만 명의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운영하는 문상훈이 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올 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에 올랐다. 부부 크리에이터 '얼미부부’의 에세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행복해진다’는 지난 6월 발간 직후 3개 온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했다.

‘개인’ 그 자체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는 최근 인기 장르다.
크리에이터들의 책은 크게 채널, 콘텐츠, 인물 기반으로 나뉜다. 먼저 채널 기반 도서는 채널 기획부터 브랜딩, 마케팅 등 전반적인 운영 전략을 담아낸다. 영상 크리에이터로서 채널 운영 노하우와 플랫폼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있기에 가능한 것. 누적 조회수 16억을 돌파한 '지무비’가 쓴 '지무비의 유튜브 엑시트’는 유튜브 알고리즘 공략 방법, 유튜브 광고 진행법 등 초보 유튜버들이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를 녹여냈다. 충북 충주시 공식 유튜브를 운영하며 '충주맨’이라 불리는 김선태 주무관이 펴낸 '홍보의 신’은 비전문가로서 촬영, 출연, 편집까지 진행한 과정을 생생히 그렸다.

채널에 올린 콘텐츠를 활용해 책을 내기도 한다. 채널의 주제 의식이나 콘텐츠 색깔이 뚜렷한 경우에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이색 동물 전문 유튜버 '다흑’과 양서류 전문 인플루언서 '안개구리’가 출간한 '안녕하세요, 개구리입니다’가 대표적이다. 촬영한 영상 및 사진을 토대로 구성한 에세이다. 비빔국수 레시피로 조회수 1114만을 기록한 시니어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는 요리법을 모아 '박막례시피’를 썼다.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인물 기반 에세이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장르다. 크리에이터가 아닌 개인으로서 영상 너머의 삶을 담아낸다. 화면 속 밝고 유쾌한 모습 이면의 역경을 극복해간 과정이 주요 주제다. 구독자 111만 명의 유튜브 채널 '빵먹다살찐떡’을 운영하는 양유진 저자는 지난 3월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를 출간했다. 난치병 '루푸스(만성 자가면역질환)’를 10년째 앓고 있는 환우로서 깨달은 삶의 소중함을 덤덤히 전한다. 가족 유튜브 채널 '방가네’를 운영하는 배우 고은아와 보이 그룹 엠블랙 출신 미르 등 3남매는 복잡한 가족사와 우울증, 공황장애를 극복한 과정을 책 '오늘도 평화로운 방가네입니다’를 통해 알렸다.
유명인들의 책 출간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하정우, 박진영, 빅뱅 등 연예인들은 자전적인 에세이를 발간해 왔다.
에세이는 영상 크리에이터 이전에 연예인들도 꾸준히 써온 장르다. 가수 박진영은 지난 1999년 음악과 사랑, 사회 문제를 고찰한 에세이집 '미안해’를 출간한 바 있다. 보이 그룹 빅뱅이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의 이야기를 담아 지난 2009년 발간한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당시 발간 한 달 만에 30만 부가 팔렸다. 배우 하정우는 '하정우, 느낌 있다’에 이어 '걷는 사람, 하정우’까지 두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권혁웅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에세이는 유명인의 개인사를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문자로 이뤄진 작품 중 유일하게 텍스트 속의 서술자와 작가가 일치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로 접하며 내적 친밀감을 쌓아온 대상의 개인적인 경험을 터놓은 이야기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다.

"작가와 비작가의 경계 무너져"

크리에이터 ‘노은솔’은 에세이 구매 시 포토카드 등 굿즈류의 부록을 증정한다.
출판업계에서 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들이 쓴 책은 '흥행보증수표’로 불린다. 인플루언서가 썼다는 이유로 평소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일종의 '굿즈’ 개념으로 구매하는 팬들이 많아서다. 이들은 연예인보다 가깝고, 보다 개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활발히 소통하는 만큼 구독자와의 유대감이 높다. 책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가 판매하는 제품은 믿고 구매하는 강력한 '팬덤 소비’를 이끄는 배경이다.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 만큼 출판사들은 인플루언서 저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팬들의 구매욕을 높이기 위해 책의 구성품도 다각화한다. 구독자 164만 명의 유튜브 채널 '꼰대희’가 출간한 '밥묵자’는 초판 한정 친필 인쇄 사인본과 미공개 영상을 제공한다. 팔로어 170만 명의 틱토커 노은솔의 '마르지 않아도 잘 사는데요’는 구매 시 저자 셀카가 담긴 포토 카드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북 콘서트 티켓, 스티커 키트 등 팬덤 소비를 자극하는 굿즈 개념의 부록들을 함께 제공한다.

팬덤의 관여도는 인플루언서가 출간한 책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이리현 21세기북스 정보개발팀장은 "똑같이 구독자 100만인 유튜브 채널이어도 구독자들의 충성도는 제각각"이라며 "조회수를 포함한 댓글, 좋아요 등을 분석해 팬들과 유대감이 높은 크리에이터가 출간할 때 실제 판매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귀띔했다.
유튜버 ‘빵먹다살찐떡’은 평소 유쾌하고 코믹한 영상 너머의 진지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개인 채널을 가진 영상 크리에이터라는 것이다. 브이로그나 Q&A 콘텐츠를 통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창구도 있고, 이야기를 들어줄 청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라는 매체를 택한 것이다. 베스트셀러 저자들도 지식 콘텐츠의 온라인화에 발맞춰 자신이 쓴 책을 다시 영상으로 풀어내는 시대다. 영상물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것에 대한 의문이 남는 까닭이다. 이에 권 교수는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를 통해 평가되는 상품에 가깝지만 에세이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며 "독자 입장에서도 애정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경험담을 영상뿐만 아니라 텍스트로도 만나고 싶은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유튜버보다는 책을 낸 저자라고 했을 때, 강의료 수준이나 명예, 위상이 달라져서 크리에이터들 사이 수요가 높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책이 일종의 '비싼 명함’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출판업계에서는 크리에이터들의 활발한 출간으로 출판시장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전통적인 태도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상품으로서의 책의 가치가 확장된 것"이라며 "작가와 비작가의 경계가 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책이 팬덤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굿즈로 기능하는 책들의 영역이 뚜렷해질수록 학술적인 책의 가치와 영향력이 보다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버출간 #인플루언서 #여성동아

사진출처 교보문고 유튜브 '충주시’ '빵먹다 살찐떡’ '노은솔’ '웃소’ '흔한남매’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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