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에 주렁주렁 소망 다 품어봤지만… 돌아온 곳은 너희들의 옆[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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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 시 장소 변경이라는 안내문에서 우천이라는 도시까지 연상했다면 시인의 기질을 가진 분으로 짐작한다.
더러는 걱정(문해력 부족)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경종(청해력 실종)을 울리려는 큰 그림마저 엿보인다.
지도에 없던 우천 시는 익명의 시인 덕분에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도시로 환생할 여지가 생겼다.
오늘은 나무가 많은 우천 시로 비 맞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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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 시 장소 변경이라는 안내문에서 우천이라는 도시까지 연상했다면 시인의 기질을 가진 분으로 짐작한다. 비웃거나 비꼬는 게 아니다. 더러는 걱정(문해력 부족)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경종(청해력 실종)을 울리려는 큰 그림마저 엿보인다. 듣지도 않고 오직 내가 믿는 대로 원하는 대로 우기는 세상에 풍자 한마당 펼쳐볼 심산은 아니었을까도 예측한다. 확대 해석은 금물이라지만 상대편에 대한 분석은 예리하게, 우리 편에 대한 해석은 유리하게 하는 국면에서 그렇게라도 해야 이해의 영토가 조금 넓어질 거란 기대는 순진한 걸까.
지도에 없던 우천 시는 익명의 시인 덕분에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도시로 환생할 여지가 생겼다. 노래채집가는 경우의 수까지 염두에 둔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우천 시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바꿔 부르면 애틋함이 제대로 전달되려나.
국어 교사 출신의 예능 PD라는 경력을 살려 ‘국어 공부 다시 하기’ 혹은 ‘예능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구상한 적이 있다. 연습 삼아 정한 첫 회의 제목은 ‘너무합니다’. 예능·교양·뉴스 할 것 없이 출연자의 입에서 ‘너무’라는 단어가 마구 쏟아지는데 제작진은 소리 나는 대로 받아쓰기를 극도로 경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너무 더워요’ ‘너무 짧아요’ 분명히 소리는 이렇게 나오는데 자막은 다르다. ‘정말 더워요’ ‘정말 짧아요’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너무’(부사)는 ‘넘다’(동사)에서 건너온 말이 확실하다. 선을 넘는 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너무’라는 단어가 활개를 펴는 거라 조심스레 짐작한다. ‘너무’ 하나론 부족해서 ‘너무너무’까지 횡행하는데 화면에 잡히는 글자는 ‘정말’ 혹은 ‘진짜’로 개명하는 현실이 ‘말 따로 글 따로’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머리가 복잡할 땐 나무들이 반기는 우천 시로 떠나 보자. 거기선 온갖 상상을 허용한다. ‘너무’가 ‘넘다’에서 넘어왔으니 ‘나무’는 ‘남다’에서 뿌리내린 거 아닐지 한번 질러나 본다. 넘길 건 넘기고 남길 건 남긴다면 세상은 쉴 만한 숲으로 변할 거다. 시끄러운 자들이 세상 한복판을 점령할 때 헤드폰으로 그 소리를 가리면 새들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 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고요만이 남겠네’(양희은 ‘아름다운 것들’)
올림픽 개회식을 해설하는 송승환을 보니 청년 시절에 그가 출연한 영화 ‘꿈나무’(1978)가 떠오른다. ‘꿈나무’는 한혜숙 주연의 드라마(1971)도 유명한데, 오늘은 주제가(원곡 유리시스터즈)에 집중한다. ‘이쪽 가지엔 건강의 열매 저쪽 가지엔 황금의 열매 명예의 열매 지위의 열매 행운의 열매 주렁주렁 세상의 소망 다 품어 보고 하고 싶은 일 다 해 봤지만 돌아온 것은 너희들의 옆.’ 드라마에선 너희가 자식이지만 부르는 사람마다 열매는 다를 수 있다. 자연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국민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치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에는 도시의 청소부(야쿠쇼 고지)가 ‘나무’(고다 아야 지음)를 탐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다가 ‘나는 오늘도 청소하러 간다’로 끝인사를 고하는데 사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수고한 사람들 명단 뒤로 핵심 자막이 뜬다. ‘고모레비(Komorebi)는 딱 한 번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고모레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새어 나오는 햇살) 서둘러 빠져나간 사람들은 아쉽게도 이걸 놓쳤다. 8월의 햇살은 극장 앞까지 침범한다. 오늘은 나무가 많은 우천 시로 비 맞으러 가야겠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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