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 나는 연봉 받다가 이젠 실업자 신세”…감원 ‘칼바람’ 부는 미국기업들
경기둔화 흐름서 신속 대응
WSJ, “고임금 시대의 종언”
노동시장 유연성 뛰어난 美
“지나친 비관론 해석 불필요”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 시스템즈가 올해 두 번째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지난 2월 4000명을 줄인 데 이어 이번에도 수천명대 감원이 예상된다. 시스코는 지난 2∼4월 매출이 1년 전 대비 12.8% 줄어드는 등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8일 미국의 미디어 기업 파라마운트 글로벌 역시 스카이댄스 미디어와의 합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감원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미국 내 인력 15%에 해당하는 2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대규모 감원 행렬에 나선 바 있다. 구글은 지난해 1월 전 직원의 약 6%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 외 아마존(1만8000명), 메타(1만1000명), 마이크로소프트(1만명), 트위터(3700명) 등 빅테크 기업들이 줄지어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고용시장이 전반적으로 둔화하면서 임금 인상폭도 크게 줄었다. 고용주 자문 업체 WTW가 올해 2분기 1900개 미국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임금 인상폭 중간값은 4.1%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4.5%) 대비 0.4%포인트 줄었든 수치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내년도 임금 인상폭 중간값은 3.9%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내년에도 임금 인상폭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팬데믹 이후 최근 수년간 경제 활동 재개(리오프닝) 효과로 과열됐던 고용시장이 냉각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분석했다.
WSJ는 고용시장 둔화세와 관련해 “두둑한 급여 상승 시대(The era of hefty pay increases)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축된 채용 시장에서 고용주들이 보너스를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성과급 인상 폭을 점점 줄이는 방식으로 급여 지출을 통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고용정보업체인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 발표를 보면 지난 7월 미국 민간기업 임금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로 2021년 7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임금상승을 동반하는 이직자의 임금 상승률 역시 전년 대비 7.2%로 전월 상승률(7.7%) 대비 둔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미국은 팬데믹 발발 직후 대량 해고 등 급격한 실업률 증가가 나타났지만 리오프닝 국면에서 고용시장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다시 고용을 늘리면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뛰었다. 근로자들이 더 나은 임금이나 근로 조건을 찾아 떠나면서 ‘대사직의 시대’(Great Resignation)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미국 고용지표는 최근 지나친 우려 심리로 인해 글로벌 주식시장에 대폭락 충격을 안겼지만 역으로 경기 침체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기업들이 뛰어난 노동 유연성을 토대로 선제적인 위기 대응에 나서왔다는 점에서 지나친 비관론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미국 경제성장의 비결’이라는 칼럼에서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유럽과 미국의 근로자 보호 정책을 비교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지는 유럽의 정부들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해고 최소화를 주문한 것과 달리 미국은 해고된 근로자를 상대로 실업 수당을 늘리는 방식을 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같은 대응이 비록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높였지만, 신속하게 고용시장의 회복을 되돌리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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