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의 정전관리 책임 [김연철 칼럼]

한겨레 2024. 8.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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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은 정전협정 위반이면서, 유엔사 규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남측의 위반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북측의 정전협정 위반만 비판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당연히 책임지지 않으려면 권한도 내려놓아야 한다.
2016년 6월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 유엔기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유엔기는 지피가 유엔사의 시설이고 관할구역임을 뜻한다. 비무장지대의 물리적 현장 관리는 국군이 하지만 출입하는 모든 인원과 병력 통제권은 유엔사가 행사하고 있다. 육군본부 누리집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유엔사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유엔사를 다자 안보기구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 독일이 1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매우 우려할 만한 일본 참여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정전 체제의 관리다. 비무장지대(DMZ)가 다시 무장지대로 변했고, 대북 전단과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날아다니고, 윤석열 정부는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다. 정전 체제가 다시 무너질 때 유엔사는 무엇을 했는가?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의 출입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내세운 것은 ‘안전’이다. 2019년 6월 독일 정부 대표단의 강원도 고성 초소 방문을 불허한 이유는 ‘안전상의 이유’였다. 2019년 8월 통일부 장관이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는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 했을 때, 동행 취재단의 방문을 불허한 이유도 ‘안전’이었다. 2021년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군복 차림으로 비무장지대를 방문했을 때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한 이유 역시 ‘안전’이었다.

‘안전’을 명분으로 행사하던 유엔사의 권한은 ‘안전’이 파괴될 때 책임을 보여줘야 했다. 권한만큼 책임도 크다. 유엔사가 만든 규정도 있지 않은가? 비무장지대로 무기를 반입하기 위해서는 유엔사 사령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북한군의 무장에 대한 사후 대응 차원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선제적인 무장화에 대해 유엔사는 무엇을 했는가?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의 재무장을 방관했다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다.

대북 전단과 북한의 오물 풍선은 어떤가? 분명히 북한의 오물 풍선은 정전협정 위반이다.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 전단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기존 법률로 대북 전단을 보내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데,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 과잉 금지라는 입장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1항이나 항공안전법과 같은 기존 법률을 엄격히 집행하면 대북 전단을 막을 수 있다. 당연히 전단을 안 보내면 오물 풍선도 안 온다.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가 중요하지만, 유엔사의 책임도 있다. 정전협정 서문은 ‘적대 행위와 무력 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규정했다. 유엔사부터 정전협정 준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유엔사의 비무장지대 비행 금지 규정도 상세하다. 드론, 대형 풍선, 모형 비행기 등 초경량 비행장치의 비행을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유엔사는 왜 비행 금지 규정 위반을 문제 삼지 않는가? 대북 전단을 보내는 단체 말고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있는가? 그것도 반복적으로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데 말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어떤가? 유엔사는 2017년 확성기 설치 장소의 교체, 보완, 수리, 운용 등에 대한 재개는 유엔사 사령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대남 선전 방송을 할 때, 대응 방송만 유엔사 사령관의 승인으로 가능하게 했다. 한국 국방부의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분명히 유엔사의 규정 위반이다. 확성기 방송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잘했지만 규정 위반을 방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권한만큼의 책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연히 책임지지 않으려면 권한도 내려놓아야 한다.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은 정전협정 위반이면서, 유엔사 규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남측의 위반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북측의 정전협정 위반만 비판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2014년 미국이 유엔사의 재활성화 논의를 시작한 이유는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돌려준 후, 미국 주도의 다자 안보기구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는 어디로 사라지고 유엔사의 역할 변화만 진도를 나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한-미 동맹을 위해서는 양측의 이익 균형이 필요하다. 미국은 한반도 안보 비용을 분담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유엔사의 역할을 변화하려고 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야 할 숙명적 과제가 있다. 유엔사가 정전 관리 책임을 회피한 채 재활성에만 집중한다면 이익의 균형이 유지되기 어렵고 한국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군사 주권이 중요하다. 주권이라는 뿌리가 튼튼하면 얼마든지 유연하게 연합전력과 다자협력을 할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점에 안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장기적으로 군사 주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의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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