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성비 50:50 이뤘지만…성 차별 여전했던 파리올림픽

오세진 기자 2024. 8.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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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결산
미국 중거리 육상 선수인 니키 힐츠(가운데)가 지난 8일(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1500미터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은 출전 선수 성비가 50대 50였던 사상 첫 올림픽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완전한 성평등을 이뤘다”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비록 출전 선수의 생물학적 성비는 균형을 이뤘지만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따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 관념을 언론이 반복하거나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선수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여론은 여전했다.

출전 자격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퍼졌던 여성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알제리)와 린위팅(타이완)에 대한 온라인상의 비난과 공격이 대표적이다. 국제복싱협회(IBA)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선수가 남성의 전유물로 알려진 엑스와이(XY) 염색체를 갖고 있어 실격 처분했다고 밝힌 데 대해 언론 보도가 집중되면서 ‘남성이 왜 여성 경기에 출전하냐’는 비난과 온라인상 괴롭힘이 일었다. 일부는 ‘외모가 여자답지 않다’는 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XY염색체가 있어도 남성이 아닐 수 있고, 대부분의 여성이 지닌 XX염색체가 있어도 남성일 수 있다. 임소연 동아대 융합대학 교수는 11일 “(남성 신체 성별을 결정한다고 알려진) Y염색체를 가졌더라도 X염색체 자리에 위치한 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고환에서 생성된 남성호르몬에 반응하지 않아 외형상 여성의 몸을 갖게 된다”며 “남성의 고환은 보통 Y염색체에 위치한 특정 유전자가 (염색체 23쌍 중) 17번 염색체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하면서 만들어지는데 Y염색체가 아닌 다른 염색체의 어떤 인자가 17번 염색체의 특정 유전자를 발현시킬 수 있다면 Y염색체가 없어도 고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번 사안은) 이마네 칼리프와 린위팅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대한 논란이어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몸을 가진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남성 신체를 표준으로 하는 의·과학 연구 관행이 변화해야 하고, 다양한 몸의 생물학과 그 차이를 연구함으로써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가 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66㎏ 결승에서 중국의 양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트랜스젠더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대해 여전히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았다. 자신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미국 중거리 육상 선수 니키 힐츠는 여성의 신체로 태어났다. 태어난 성별은 여성이므로,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남자 몸을 가진 사람이 왜 여성 경기에서 뛰냐’며 사실 관계까지 왜곡했다.

특히 트랜스여성(출생 때 지정 성별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성별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 선수가 시스젠더(출생 때 성별과 개인의 성별정체성이 일치) 여성 선수와 경기를 할 때 이런 비난은 두드러진다. 트랜스여성이 남성이었던 시절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으로 만들어진 신체 조건이 성전환 뒤에도 지속돼 운동 능력이 더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책 <모두의 운동장>(2023년) 등에 따르면 현대 의·과학으로는 트랜스여성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 선수보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경기력 차이를 보이는지 완벽하게 판단할 수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21년 9월에 발표한 ‘성정체성·성별 다양성에 대한 공정·포용·비차별에 관한 프레임워크’에서 제시한 10가지 원칙. 누리집 갈무리

이런 까닭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50여명의 선수 및 전문가와 2년 동안 논의 끝에 2021년 9월에 발표한 ‘성정체성·성별 다양성에 대한 공정·포용·비차별 프레임워크’에서 트랜스여성 선수들의 출전 기준 중 하나였던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혈중 농도 규정을 없앴다. 앞서 2015년 가이드라인에선 트랜스여성 선수 출전 자격을 △여성임을 선언하고 이를 최소 4년간 유지 △대회 직전 12개월 동안 남성호르몬 혈중 농도가 혈액 1리터당 10나노몰 이하 등으로 규정했는데 차별 논란이 불거지며 이를 모두 폐지했다. 대신 트랜스여성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과 비교해 불공정한 이득은 없다며 경기력 우위에 대한 강력하고 일관된 연구 결과 없이 대회 참가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원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트랜스여성 선수의 출전 자격은 종목별 연맹(IF)이 자율로 정하도록 했다.

류민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신장 우위가 유리한 농구 종목에서 키가 2미터가 넘는 사람이 아무런 규제 없이 그대로 농구를 하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왜 성별에만 이렇게 ‘논란’이 생기는 것인가. 이런 논란이 누구의 권리를 빼앗고 누구의 일상을 위축시키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비난을 당하는 피해자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 ‘여성이 맞느냐’는 의혹을 받는 여성들, 인터섹스(신체적 또는 생물학적 성징이 전통적인 정의에서 말하는 남성 또는 여성에 맞지 않는 사람)와 같이 신체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이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계속된다면 이들은 ‘난 어디에서 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체육 활동 참여 기회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스포츠는 성별 고정관념이 두드러진 분야 중 하나다. ‘여성답지’ 못하거나 ‘남성답지’ 못한 선수의 출전은 여론의 공격을 받는다. 과학 연구에서도 이런 차별과 배제가 드러난다. 여성은 남성과 비교해 호르몬·생식기·유전자 등이 다르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의학 연구에서 그저 ‘작은 남성’으로 간주됐다. 또 남성과 여성 그 사이 다양한 몸에 주목하지 않았다. 저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통해 과학 연구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알린 임소연 동아대 융합대학 교수는 파리올림픽에서 불거진 출전 자격 논란을 통해 “과학이 다양한 몸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파리올림픽에서 복싱선수 이마네 칼리프(알제리)와 린위팅(대만)의 여자부 출전 자격이 논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성별 이분법의 경계를 넘는 포용·다양성은 시대적 가치입니다. 파리올림픽에서 여성 복싱에 출전한 XY염색체를 가진 여성 선수는 2명이지만 남성 복싱에 출전한 XX염색체를 가진 남성 선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유사한 지난 사례들을 봐도 주로 논란이 되는 쪽은 여성 스포츠죠. 그렇다 보니 주로 여성 선수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요. 충분히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모든 선수가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규정과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안이함에 선수 개인이 비난을 받게 돼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간성(인터섹스)의 신체적 차이에 대해서도 과학적,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언론은 특히 두 선수가 가진 XY염색체에 주목해 이번 사안을 성별 논란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 시각은 문제적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선수의 성별 그 자체가 아니라, 칼리프 선수처럼 XY염색체를 갖지만 안드로겐 무감성 증후군(체내에 존재하는 남성호르몬 수용체에 이상이 생겨 외부 성기 등 신체 외형은 여성) 등으로 인해 간성의 몸이 갖는 생물학을 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성 신체를 표준으로 하는 의·과학 연구 관행이 변화해야 하고요. 여성의 몸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간성의 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간성의 몸이 갖는 생물학을 봐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를테면 안드로겐 무감성 증후군으로 인한 간성의 경우 외부 생식기와 신체 외형은 여성이지만 난소나 나팔관, 자궁 등 여성 생식 기관은 없고 고환이 몸 속에 잠복해 있게 됩니다. 물론 남성 생식기는 없죠. 안드로겐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으로서의 2차 성징에 필요한 테스토스테론에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월경(호르몬의 주기적 변화) 등을 겪지 않기 때문에 XX염색체를 가진 여성과의 신체적 혹은 정서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간성의 신체가 갖는 생물학을 보자는 말은,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갖지만 XX염색체를 갖는 여성과 간성인 XY염색체의 여성, 그리고 XY염색체를 갖는 트랜스젠더 여성, 이 세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번 논란의 바탕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편견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편견은 문제적이고 타파돼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식만 문제 삼는다고 해서 논란이 해결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회적 편견이 생물학 연구와 해석을 왜곡시켜 남성의 우월함과 성차별을 정당화해 온 역사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몸의 물질적 차이 자체가 온전히 사회적 구성물인 것도 아니고 개인 의지로 몸을 온전히 통제하거나 변형하는 일이 가능하지도 않거든요. 스포츠가 남녀로 구분된 것을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 탓으로만 보면, 자칫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잘못된 고정관념과 동일시할 우려가 있습니다. 과학조차 생물학적 성차에 대해 아직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과학 연구가 주로 남성 신체를 표준으로 해왔고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고정관념에 따라 연구하거나 간과해 온 사례도 많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인 성(젠더) 그리고 다양한 차이를 고려한 과학기술 연구를 하자는 ‘젠더혁신 프로젝트’가 2009년에야 미국에서 시작됐어요. 국내에서 ‘소화기질환의 성차의학’이라는 책이 나온 게 불과 3년 전(2021년)입니다. 이번 기회에 성차에 대한 과학적 관심과 성차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이번엔 과학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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