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미운 오리새끼, 화폐박물관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라는 동화를 읽어보셨을 것이다. 미움 받던 오리새끼가 다름 아닌 백조였다는 내용인데, 화폐박물관은 나에게 동화 속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졌다. 한국조폐공사에 부임해 업무와 시설에 대해 보고를 받으며 우리 공사의 화폐박물관에 대해 알게 됐다. 넓은 대지에 잘 가꿔진 잔디밭, 편리한 주차 시설, 카페, 탄동천 벚꽃 길을 품은 대한민국 최초의 화폐박물관. 1988년 개관해 지금까지 500만 명이 다녀간 대전의 명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박물관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화폐 사업량 감소 등으로 회사 경영이 위기인데 박물관 담당 직원들을 상주시키며 무료로 운영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화폐박물관이 지역의 문화공간이며 상생의 거점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느꼈다.
지난봄 화폐박물관이 개최한 '벚꽃페스티벌'에는 공연과 함께 벼룩시장이 열렸는데, 지역 내 사회적 기업과 단체 등 120여 업체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고, 이를 위해 모여든 수천 명의 시민들과 아이들의 즐거움 속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 상인들에게 장터를 열어 판로를 만들었고, 수익금은 자발적인 기부로 이어져 지역 상생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작년 12월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지역사회공헌 인정제'에 대전지역 공기업으로 5년 연속 선정된 곳은 조폐공사 등 2개 기관뿐인데, 화폐박물관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교육도 열정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경제교육, 다문화 가정을 위한 예술교육, 청소년을 위한 화폐교육은 문화기업을 지향하는 조폐공사의 구심점이자 공사 지식경영의 대국민 제공사업 일환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예술가를 위해 특별 전시실을 무료 대관으로 운영하며 작품 활동 지원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인데, 매년 20여 단체와 개인이 혜택을 받고 있다. 박물관 광장에서는 매년 봄 육상 꿈나무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조폐공사배 크로스컨트리 대회'도 개최해 50년 가까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 구성도 흥미롭다. 주화역사관, 지폐역사관, 위조방지홍보관, 한국조폐공사관 등 총 네 개로 이루어진 전시실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 각국의 희귀 주화와 화폐가 전시되어 눈길을 잡는다. 조폐공사의 위조방지 기술을 확인하는 것을 물론, 압인 기술을 활용한 BTS, 손흥민 선수의 메달 제품까지, 화려하고 특색 넘치는 오천여 점의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이런 덕분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난 어린이날에는 지역 어린이들을 초청해 화폐에 관한 해설을 직접 해보는 경험도 했고, 보훈의 달 6월에는 6·25 참전 용사들을 모셔 어르신들이 받은 훈장도 조폐공사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전해드려 각별한 기쁨을 선사했다.
지금처럼 아이들의 방학 기간에도 화폐박물관은 쉴 새 없이 바쁘다. 지역 초등학생들이 신청만 하면 견학은 물론, 만들기와 학습을 겸한 경제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인형극 관람의 기회도 제공된다. 다가올 가을에는 볼거리가 더 풍성하다. 9월에는 버스킹을 비롯한 음악회 연주를 은행나무 아래에서 들을 수 있다. 그 옆 새롭게 단장한 카페 '休머니 라운지'는 커피 한잔을 하며 바라보는 창밖의 탄동천 풍경을 덤으로 즐길 수 있기에 박물관 관람객뿐 아니라 주위 연구원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고객이 작년보다 30%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폐박물관은 다녀가는 모든 이들에게 웃음과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것이 화폐박물관을 위해 투자를 하는 이유다. 다음 달 리뉴얼하는 위조방지홍보관에서는 조폐공사의 ICT·보안 기술 발전에 대한 전시물을 새롭게 만날 수 있고, 겨울쯤에는 화폐와 관련된 조폐공사만의 소소한 기념품을 고르는 재미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대전을 노잼 도시라고 말하지만 화폐박물관만큼은 그렇지 않다. 주변 사람들만 누렸던 탄동천 산책길을 대전의 관광명소로 만들고, 화폐박물관 안에 숨어있던 아름다운 가치를 시민들에게 널리 전할 것이다. 미운 오리가 결국 백조로 커나갔듯, 화폐박물관의 미래도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자라길 바란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예금 보호 한도 '5000만→1억' 상향… 여야 6개 민생법안 처리 합의 - 대전일보
- '세계 최대 규모'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3.6㎞ 전 구간 개방 - 대전일보
- 안철수 "尹 임기 넘기면 더 심한 특검… DJ·YS 아들도 다 감옥" - 대전일보
- 약발 안 드는 부동산 대책…지방은 '무용론' 아우성 - 대전일보
- 가상화폐 비트코인, 사상 첫 9만 달러 돌파 - 대전일보
- 미리 보는 내 연말정산 환급액은?…관련 서비스 15일 개통 - 대전일보
- "방축천서 악취 난다"…세종시, 부유물질 제거 등 총력 - 대전일보
- 법원, 이재명 '공직선거법' 1심 선고 생중계 안한다 - 대전일보
- "요즘 음식점·카페, 이용하기 난감하네" 일상 곳곳 고령자 배려 부족 - 대전일보
- 대학 졸업해도 학자금 못 갚는 청년들… 체납액 급증 - 대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