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 결국 이선균을 생각하며 '행복의 나라'

손정빈 기자 2024. 8. 1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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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는 현재 한국영화가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근현대사다. '남산의 부장들'(2020)은 10·26 사태를 파헤쳤고, '서울의 봄'(2023)은 박정희 암살 이후 두 달이 채 안 돼 발생한 12·12 쿠데타를 들여다봤다. 10·26과 12·12를 다룬 추창민 감독의 새 영화 '행복의 나라'(8월14일 공개)는 이번엔 박정희가 살해당하고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핵심은 박정희 암살범과 공범들에 대한 재판. 다만 이 영화는 박정희를 향해 직접 총을 쏜 김영일(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아닌 그의 수행비서관인 박태주(박흥주) 대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를 변호하는 정인후(가상 인물)를 통해 극을 전진시킨다.

'행복의 나라'는 편하고 쉽다. 앞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두 편이 과장되게 엄숙하거나 지나치게 장르화 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사건의 중차대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법정물로서 매력 또한 살리려 한다. '남산의 부장들'이나 '서울의 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코미디가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나 주요 캐릭터의 인간성을 반복해서 드러내려는 것 역시 '행복의 나라'가 보편을 지향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선악을 최대한 명확하게 구분하고, 주인공 대사를 통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본 관객이라면 세 영화가 어떻게 물고 물리는지 짚어가는 것도 '행복의 나라'를 보는 재미가 될 수 있다.


조정석·유재명·이선균 등 배우 연기 보는 맛도 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영화 '파일럿'에선 특유의 코미디 연기로 관객을 웃기던 조정석은 불의에 울분을 터뜨리는 변호사를 맡아 상반된 얼굴을 보여준다. '행복의 나라'에서 조정석이 보여주는 연기 폭을 보면, 그가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그냥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유재명은 전두환이 모티브가 된 전상두를 맡아 절제되고 압축적인 연기를 하면서도 극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보여주고, 이선균은 대사 없이 표정 하나만으로도 박태주라는 인물의 성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한다. 우현·최원영·전배수·송영규 등도 역할 딱 맞아떨어지는 연기로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처럼 장점이 없지 않은 영화이지만 관객을 매혹한 만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두루 아우르려 한다는 건 '행복의 나라'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취약점이다. 말하자면 '행복의 나라'는 이 비극적 역사를 '남산의 부장들'만큼 근엄하게 다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울의 봄'처럼 스릴 있게 표현하지도 못한다. 역사물로서는 빈약히고, 법정물로서는 성기다. 여기에 다소 거친 방식으로 메시지를 삽입한 것은 그리 좋은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추 감독은 "10·26과 12·12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보여주고 싶었으며, 이 영화는 그 시대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라고 했다. 물론 그 의도는 존중해야겠지만, 이 사건들에 대한 대중의 역사적 평가가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나온 그 표현 방식이 유효하다고 평하긴 어렵다.


'행복의 나라'는 어쩔 수 없이 이선균의 영화다. 유작 두 편 중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가 먼저 공개되면서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의 새로운 연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 됐다. 올바른 군인의 자세를 추앙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군인 정신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난 박태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선균이라는 배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내 표정이 없던 박태주가 옅은 미소를 내보일 때 이선균이 나온 수많은 영화·드라마가 스쳐 지나간다. 박태주는 정인후에게 말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네가 좋은 변호사라는 거야." 이건 아마도 우리가 이선균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네가 좋은 배우라는 거야."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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