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배란 주사 없이 난임 치료” 미성숙 난자로 맞춤형 체외수정
시험관아기시술로 불리는 체외수정(IVF)은 난자가 많이 필요해 여성이 과배란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난소 문제로 과배란 주사를 맞지 못하는 여성도 있다. 이런 여성을 위해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IVM)’이 쓰였다. 이제 이 방법이 많은 난임 여성에게 적용돼 개인 맞춤형 난임치료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부작용이 많았는데, 미성숙 난자를 배양해 체외수정에 쓰면 그런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
차의과대 차병원은 1989년 세계 최초로 IVM 기술을 개발해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지난 6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차병원 난임센터에서 만난 최동희 교수는 “국내에서 개발된 IVM 기술이 현재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임신 성공률도 최대 45%에 이른다”며 “다음 달부터 잠실차병원에 국내 첫 IVM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배란 유도 없이 체외수정 가능
최동희 교수는 “체외수정 과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보통 10일 동안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하지만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은 과배란 유도 주사를 10분의 1 수준으로 맞거나 또는 거의 맞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만큼 미성숙 난자를 성숙 난자로 키워야 해 실험실에서 하는 일은 많아지지만 환자가 감당해야 하는 부작용은 크게 줄어든다”고 했다.
여성의 난소는 한 달에 한 번 난자를 배출하는 배란을 한다. 난자를 싸고 있는 주머니인 난포가 여러 개 준비되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장 성숙한 난자 하나만 나오고 나머지는 퇴화한다. 체외수정 성공률을 높이려면 난자가 많아야 한다. 난임 여성이 난자를 채취하기 전에 배에 맞는 주사가 바로 과배란을 유도한다. 그러면 매달 하나만 나오던 난자를 많게는 십여 개까지 채취할 수 있다.
하지만 난자가 평소보다 많이 생기는 만큼 부작용이 생긴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고통 외에도 우울감이나 두통, 심지어 복수가 차 통증을 유발하는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생기면 메추리알 크기만 한 난소가 한라봉만큼 빵빵해진다. 결국 체외수정 시술을 받는 만큼 여성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한다.
의사들은 몸에서 인위적으로 난자 여러 개를 성숙시켜 채취하는 대신, 미성숙 난자를 채취해 몸 밖에서 배양하며 성숙시키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이다.
◇난자 성숙·배양 기술 발달로 임신 성공률 높여
1980년대만 해도 의학계는 미성숙 난자는 결코 태아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차병원 연구진이 이런 편견을 처음으로 무너뜨렸다. 미성숙 난자라도 몸 밖에서 자궁과 비슷한 특수 환경에서 배양하면 성숙 난자가 돼 이론상 정자와 체외수정이 가능했다.
난자가 성숙하면 난포가 2㎝로 커지고, 난자의 세포핵이 성숙하면서 분열하기 시작한다. 세포가 4개로 분열했을 때 큰 게 난자이고, 나머지 작은 세포 3개가 극체이다.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은 난포가 0.8~1.2㎝ 정도로 작고 난자는 극체가 생기는 분열이 일어나기 전에 채취한다.
초기에는 미성숙 난자에서 핵이 성숙하는 과정만 빨리 유도하는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난포가 여러 개 나타나는 질환인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을 시술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는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생길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난자를 성숙시키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 기술적인 한계로 임신 성공률도 매우 낮았다.
최근에는 미성숙 난자 배양 기술과 배양 장비가 발달하면서 IVM이 다낭성 난소증후군뿐 아니라 다양한 난임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떠올랐다. 미성숙 난자의 핵뿐 아니라 세포질 성숙도 함께 유도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난자의 성숙도를 보는 편광현미경, 미성숙 난자를 배양하는 인큐베이터 등 최첨단 장비도 나왔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호주와 벨기에, 중국, 베트남 등 해외의 난임센터들도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 기술을 도입해 연구하고 있다. 2022년 미국 생식의학회도 이 기술을 시험관아기 시술의 새로운 방식으로 인정했다. 최근에는 경험 많은 연구원들도 늘었다. 미성숙 난자 채취와 배양은 일반 난자 채취, 배양보다 어려워 숙력 인력이 필요하다.
최동희 교수는 “미성숙 난자를 성숙 난자로 배양하는 성공률이 과거에는 50%였지만 지금은 기술발달로 60~70%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 임신 성공률도 27~35%까지 높아졌다. 기술력이 좋은 일부 난임센터는 45%까지 성공했다.
지금은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기 힘든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뿐 아니라 다양한 원인을 가진 난임 환자들이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으로 임신을 할 수 있다. 암환자도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같은 시술을 받는다. 기존 체외수정은 여성 월경주기상 한 달을 대기해야 하는데, 미성숙 난자로 하는 체외수정은 월경주기와 관계 없이 일주일 안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환자가 난임 원인에 따라 맞춤형으로 체외수정을 시도할 수 있다”며 “자연 임신이나 일반 체외수정, 미성숙 난자 체외수정 모두 아기의 건강에 차이가 없는 만큼 수많은 난임 부부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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