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땡큐 이스라엘'…중국은 웃고 있나?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2024. 8. 12.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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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위기와 관련해 마이클 에릭 쿠릴라(Michael Erik Kurilla) 미국 중부 사령관이 중동으로 다시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이스라엘을 방문해 군 수뇌부와 회의를 하는 모습. 미국 중부사령부 US CENTCOM 제공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피살되면서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될 지 기로에 섰다. 지난달 새로 선출된 이란의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보복 전쟁에 나서지 말자는 입장이지만 실권을 쥐고 있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수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란이 지원을 해온 헤즈볼라와 하마스, 후티반군 등 이슬람 무장세력들도 들끓고 있다. 이란의 선택과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할 기세다. 이란이 맹주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요구를 아주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갈 경우 중동 지역의 강국으로서 이란의 지도력은 힘을 잃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과 이슬람 무장세력의 보복 공격 개시에 대비해 중동에서의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걸프 및 아라비아해, 인도양 등 5함대 구역에 항공모함 에이브러함 링컨호의 출격을 명령했다. 링컨호는 해당 해역에서 현재 임무를 수행중인 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를 대체하게 된다. 미군의 전투기 1개 편대와 대공 방어용 순양함, 구축함들도 이미 배치가 완료됐을 것이다. 중동을 관할하는 미군 중부 사령부의 마이클 쿠릴라 사령관도 미 본토의 플로리다주에 있는 본부를 떠나 급히 중동으로 날아갔다. 이스라엘 군을 지원하고 미군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중동에서의 전쟁은 부담이다. 당장 증시와 경제 악영향을 주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전 정서도 우려해야 한다. 하지만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이 공격 받는 것을 그냥 방치할 경우 미국 내 돈과 권력을 거머쥔 유대인들이 공화당으로 떠난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너무 노골적으로 지원하면 아랍 국가들의 반발이 걱정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피살된 직후  "미국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즉시 선을 그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이슬람 무장세력 궤멸 작전은 이렇게 셈법이 복잡한 미국의 중동 외교를 더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이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나 다름없다며 절규하고 있다. 이런 때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이슬람 국가들의 반이스라엘, 반미 감정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에 협조를 하고 있는 온건한 아랍 국가들의 국내 정치적 입지까지도 좁아지게 만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국과 유럽을 단결시켰다면 중동에서의 전쟁은 미국과 아랍 국가들을 갈라놓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중동에서의 이런 외교적 딜레마를 주로 막강한 군사력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카타르 등 걸프지역 국가들에 군대를 주둔 시키고 안보를 보장해 준다. 아울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원유 수출에 필수적인 해상운송 질서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중동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인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는 1만 명이 넘는 미군과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고 100대 이상의 군용기가 전개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바레인에는 지난 1995년부터 미 제 5함대의 기지가 들어서 있고, 해적 퇴치를 목적으로 한 다국적군의 연합참모단도 운용 중이다. 전쟁이 끝난 이라크에도 공군기지 4곳과 일반 군 기지 4곳 등 7개 군기지에 약 2천 500명의 미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다.

지난 달 12일부터 중동 해역에서 작전중인 미국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 이번 늦여름에 인도태평양지역으로 복귀하고 대신 항공모함 에이브러함 링컨호가 중동의 걸프지역, 아라비아해 등 중동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미국 중부사령부 USCENTCOM 제공


하지만 미국의 패권은 예전같지 않다. 지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는 베트남전 패전을 연상케 하는 굴욕의 상징이 됐다. 미국은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천문학적 돈을 퍼부었고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소련이 붕괴된 상황에서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주둔시켜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미국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정부는 물론 바이든 행정부조차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에 명분도 이익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점점 해외 군사 개입보다는 물가와 일자리, 이민자 문제 등 국내 문제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에 개입하기는 버거운 상황이다. 외교 정책도 중국 견제와 유럽 안보 같은 중요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직면한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외교력을 우선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핵심적 이해 관계가 걸리지 않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존재감이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 틈을 발 빠르게 파고 들고 있다. 중국의 세력 확장 야심은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태평양 섬나라까지 뻗치고 있다. 주로 경제력을 지렛대로, 혹은 이를 활용한 외교적 강압을 통해 상대 국가에 권력을 행사한다. 미국의 소홀히 하고 있는 지역에서 중국의 이런 전술은 더 잘 먹힌다.

중국은 지난해 3월 베이징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전격 성사시켜 국제 사회를 놀라게 했다. 우방인 이란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설득해 중동의 숙적이었던 양국의 화해를 이끌어 낸 것이다. 지역 내 주요 국가들 간의 이런 조정자 역할은 그동안 유일하게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력을 무기로 초강대국 지위를 노리는 중국이라는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미국과 중동 이슬람 국가들 간의 거리를 더 벌어지게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베이징에서 만나 상호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중재를 한 중국은 두 나라와 함께 3국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 제공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고문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과거 오랫동안 중동의 4대 강국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중동에서의 이익이 안전하게 확보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란과는 적대적 관계가 됐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중동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UAE) 등 중동의 다른 친미 국가들도 미국의 안보 공약을 의심하게 된다. 브레진스키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미국이 지원해온 국가들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보다 믿을 만한 새로운 강대국에 기대야 할 것이며 중국은 분명히 그 자리를 탐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동의 지정학적 환경은 급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미국 그리고 글로벌 파워의 위기, 2012). 지난 5월에는 대표적 친미 국가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베이징에서 중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군사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의 중동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미국과 비교해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처럼 중동지역에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에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중국도 이번 전쟁을 반길 상황은 아닌 것이다.  중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문하면서 기본적으로 관망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동시에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지지를 보낼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동에서 미국에 맞설 상대는 못 되지만 아랍 국가들에 대해 응원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3월 아라비아해 오만만(灣)에 군함 3척을 보내 러시아, 이란 등과 해군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끊임없이 미국의 자리를 넘보는 중국에게 중동에서의  전쟁은 위기만은 아니다.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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