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방안'과 '통일담론' 사이[한반도24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발전적 계승을 표방
자유와 인권 강조, 차별화된 통일 구상 예상
명시적 방안보다 실질적 통일전략 중요
노태우 정부가 여야 간 초당적 합의를 통해 1989년 9월 11일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김영삼 정부가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서 보완·발전시킨 통일방안이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약칭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이후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을 정부 통일방안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북한도 수용할 정도로 합리적 내용을 담고 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과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북한이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은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를 묶어놓고 두 나무가 붙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남과 북이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은 상대방을 공존의 대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화해협력, 공존공영의 6·15시대’는 북한의 핵개발과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관계 표방으로 종언을 고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부각하고 더 이상 통일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대한민국을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거나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 족속’으로 규정하고 ‘영토평정’의 대상이라며 대남 핵사용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와 핵무력 사용과 관련한 임무를 헌법과 법률로 제도화했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남북교류와 협력을 차단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며 대남 적개심을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발전적 계승을 표방했지만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차별화한 새로운 통일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계승보다는 헌법에 입각한 ‘국토회복’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 당국자들은 헌법 3조와 4조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단정하고 북한지역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통합하는 것을 통일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자 숙원이 된 것은 타의에 의한 분단 때문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명시적으로 공존 통일방안을 내놓고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통일전략은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이었다. 이제는 남과 북이 명시적 공존 통일방안을 걷어내고 흡수통일과 영토평정의 정면 대결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을 내세우고 수령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할 태세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런 시도를 정권붕괴와 흡수통일 추구로 인식하며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기존 통일방안을 대체하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할지, 아니면 윤 정부가 지향할 통일구상을 담론수준에서 제시할지, 아직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새 통일방안을 여야 합의로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충분한 여론 수렴과 초당적 합의 없이 새 통일방안을 낼 경우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을 실현한 나라들의 역사적 교훈은 명시적 방안보다는 실질적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남갈등을 불러올 새 통일방안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통일전략의 대강을 통일담론 또는 통일구상으로 구체화해서 밝히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지층을 결속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으로는 결집된 역량으로 통일을 실현하기 어렵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란 말이 생겨났다. 북한이 인정한 대로 보수정부나 진보정부나 대북정책의 목표는 같았다. 다만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과 과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을 지속하면 대북전략의 함의도 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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