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검사장이 여고 앞 음란행위…"나 아니다" 발뺌, 결국 사표

소봄이 기자 2024. 8.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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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고스란히…10일 만에 "수치스럽다" 항복 [사건속 오늘]
"성 선호성 장애, 치료받겠다" 기소유예 처분…변호사로 복귀
('PD수첩' 갈무리)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녹색 반소매 티셔츠에 흰 바지, 머리가 벗겨진 남성이 제주의 한 대로변에서 여러 차례 음란행위를 하다 붙잡혔다. "산책했을 뿐"이라며 누명을 써 억울하다고 호소했던 남성은 알고 보니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당시 52·사법연수원 19기)이었다.

◇여고 앞 분식점서 음란행위 한 '신원불상' 남성 "누명 썼다" 2014년 8월 12일, 오후 11시 32분부터 11시 52분까지 20분간 제주시 중앙로(옛 주소 제주시 이도2동) 왕복 7차선 도로변에서 한 남성이 왔다 갔다 하며 다섯 차례에 걸쳐 음란행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음란행위를 한 곳은 모두 모 여자고등학교에서 100~200m 떨어진 곳이었다. 남성은 여고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음란행위를 이어갔다.

이때 귀가하던 여고생 A 양(당시 18)이 인근 분식점 앞을 지나가다 이 장면을 목격해 "어떤 아저씨가 제주소방서 인근 분식점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는 곧바로 출동해 13일 오전 0시 08분쯤 한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았다.

하지만 남성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30여분간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경찰은 13일 오전 0시 45분쯤 이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PD수첩' 갈무리)

경찰이 순찰차에 태운 남성의 얼굴을 랜턴으로 비추자, A 양은 "녹색 셔츠에 흰 바지, 머리가 벗겨진 것을 보니 (목격한 남성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면서 그를 피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지구대로 연행해 소지품 검사를 실시했고, 남성의 바지 주머니에서 15㎝ 크기의 베이비로션이 나왔지만 음란행위 기구가 아니라고 판단해 사진만 찍고 돌려줬다.

남성은 계속해서 경찰의 신원 확인에 불응하며 혐의를 부인했고, 급기야 친동생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며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 그러나 지문 확인 결과 거짓말로 들통나자 그제야 자신의 이름이 '김수창'이라고 밝혔다.

제주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조사받은 남성은 "산책하다가 오르막길이라 힘들고 땀이 나서 문제의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았다. 다른 남성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며 자신은 누명을 쓴 것이라 주장했다.

남성은 끝까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범행을 부인하면서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해 진위를 가려달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남성은 풀려났다.

('PD수첩' 갈무리)

◇'공연음란' 지목된 제주지검장 "인격 말살" 사표 제출

다음 날인 14일 오후 3시 3분쯤, 자칭 '심부름꾼'이라는 남성이 경찰에 찾아와 "수사 기록에 첨부해달라"며 진술서가 담긴 봉투를 제출했다.

제출한 진술서에는 'CCTV를 확보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산책하다 분식점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 음란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심부름꾼'은 전날 문제의 남성을 유치장에 가뒀던 것을 강하게 항의하는 등 담당 형사와 언쟁을 벌이다 모욕죄로 체포됐고, 10분 만에 풀려났다.

이 소동을 통해 담당 형사는 '심부름꾼'이 제주지검 직원임을 확인했고, 인터넷에 '김수창' 이름 석 자를 검색해 보고 나서야 신분을 감추던 남성이 제주지검장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솔직히 너무 놀라서 그때 좀 많이 당황했다. 그날 청이 뒤집어진 거로 알고 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지검장은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지 나흘이 지난 17일 오전 10시 50분쯤 예고 없이 서울 서초동 서울 고검 기자실을 찾아 입장을 밝혔다.

그는 "확인되지도 않은 터무니 없는 의심으로 한 공직자의 인격이 말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산책하다 잠시 쉬기 위해 분식점 앞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날 체포했다. 경찰이 날 피의자로 오인해 벌어진 일이다. 당시 (범인으로 보이는) 다른 남성이 분식점 근처에 있다가 휴대전화를 보고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경찰 체포 당시 동생 이름을 댄 것과 관련해서는 "검사장이라는 신분이 약점이 될 것을 우려했다"며 "죄가 없기 때문에 하루 이틀 해명하면 조용히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란행위를 했다면 증거가 남았을 테니 검사해 보라고 경찰에 속옷을 제출했지만 나온 게 없었다"며 "검사장으로서의 신분이 (경찰 수사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검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길 자청하고 인사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공연음란 혐의를 부인했다.

법무부는 다음 날 즉각 김 전 지검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면직 처분했다. 김 전 지검장은 차장검사에게 직무 대행을 명령하고 병가를 낸 후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PD수첩' 갈무리)

◇CCTV 8대 '빼박 증거'…10일 만에 항복 "수치스럽다" 경찰은 범행 장소인 분식점 앞을 비추는 CCTV 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했다. 경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사건의 전말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지검장이 체포된 곳에는 8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고, 여기에는 단 한 명의 남성만이 중요 부위를 내놓고 음란행위 하는 모습이 명백하게 찍혀 있었다.

CCTV 분석에 따르면, 초록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 추정 남성은 체포되기 약 2시간 전인 12일 오후 10시쯤 분식점에서 100m 떨어진 여고 주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0시 10분쯤, 그는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을 뒤따라가다가 이 여성들이 화장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뒤돌아서자 반대편 출입구로 빠져나갔다. 남성은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간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봤다.

이후 1시간여 행적이 묘연해진 남성이 다시 등장한 곳은 체포 현장 맞은편 건물이다. 그가 이곳에서 성기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 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고, 총 20분간 7차선 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모두 5차례 음란행위 한 사실이 밝혀졌다.

8월 22일 경찰은 "화면 속 인물이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맞다"고 발표하며 공연음란 혐의로 그를 검찰에 송치했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던 김 전 지검장은 CCTV 증거가 공개돼 꼬리가 잡히자, 사건 발생 10일 만에 항복했다.

이날 경찰 발표 4시간여 뒤, 그의 법률 대리인이 대신 나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법절차도 성실히 따르겠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아울러 "극도의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고 덧붙였다.

법률 대리인은 당시 김 전 지검장의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어 대리인을 통해 심경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 뉴스1

◇"바바리맨과 달라, 성 선호성 장애"기소유예 처분

검찰은 공정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광주 고검 박철완 부장검사를 제주지검 검사 직무대리 형식으로 파견해 사건을 수사토록 했으며, 검찰시민위원회에 회부해 의견을 물었다.

같은 해 11월 10일, 광주 고검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11명의 위원은 김 전 지검장에 대해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하는 것으로 의견을 전달했고, 검찰은 이를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가장 약한 수위의 처분인 '기소유예'가 내려진 배경에는 김 전 지검장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가 재범 위험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그의 음란행위를 목격한 여고생이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처벌을 원치 않는 점이 작용했다.

11월 25일, 제주지검은 광주고등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김 전 지검장에 대해 병원 치료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결정했다.

김 전 지검장 담당의는 "그가 범행 당시 오랫동안 성장 과정에서 억압된 분노로 비정상적인 본능적 충동이 폭발했고, 이성적 판단이 제대로 작동 못해 욕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된 정신 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김 전 지검장이 범행 당시 '성선호성 장애' 상태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인용해 그의 음란행위가 전형적인 '바바리맨' 형태의 범행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신체 중요 부위를 타인에게 노출해 쾌감을 느끼는 '바바리맨'과 달리 김 전 지검장은 특정인을 향해 자기 신체를 보여줄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단, 김 전 지검장이 사람들이 목격할 가능성이 큰 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했기 때문에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사표 수리에길거리 음란행위 1년 만 '변호사 사무실' 개업

다만 이 과정에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무부는 수사 중인 사안임에도 그의 사표를 곧바로 수리, 의원 면직 처분을 내렸다.

이는 김 전 지검장이 '공연음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공무원 연금은 물론 변호사 개업에도 원칙적으로 문제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검찰은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나도록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뜸을 들이다 김 전 지검장의 병력 등 유리한 정황이 확보되자 뒤늦게 검찰시민위원회에 판단을 떠넘겨 기소유예 처분의 당위성을 확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치료를 받은 김 전 지검장은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15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 2015년 9월 입회를 허가받아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2016년엔 카지노 고객 성매매 알선 혐의로 구속기소 된 여행사 업체 대표 송 모 씨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같은 해 8월 진행된 송 씨 재판에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변론을 맡은 저도 2년 전 이맘때 피고인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제대로 깨달았고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길거리 음란행위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동시에 "피고인에게 엄벌보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 새롭게 태어나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송 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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