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 20년 만에 ‘시장’ 선출 가능해지나
2개 행정시만 두는 혁신안 선택… 도지사에 시장 임명 등 권한 몰려
오영훈 지사, 행정체제 개편 나서… ‘기초자치단체 설치’ 정부에 건의
“투표 거쳐 2026년 7월 출범 목표”
제주도민이 20여 년 만에 ‘시장(市長)’을 뽑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사라진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도지사에게 몰린 권한
2005년 7월 2일 제주에서 전국 최초로 행정 계층 구조를 바꾸는 주민투표가 열렸다. 투표 결과 도민들은 기존 4개 기초자치단체(제주시·서귀포시·남제주군·북제주군)를 없애고 단일 광역자치단체(제주도) 아래 법인격이 없는 2개 행정시(제주시·서귀포시)만 두는 혁신안을 선택했다. 행정시는 도지사가 시장을 임명하고 의회도 없어 자치단체라고 할 수 없다.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2006년 2월 9일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의 법적 근거가 되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같은 해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공식 출범했다. 특별법에는 행정시 기관장의 명칭을 ‘행정시장’으로 정했고 신분은 ‘정무직 지방공무원’, 임기는 2년에 연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제주는 인구와 관광객 증가, 투자 확대, 대규모 개발사업 시행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특별법을 통한 규제 완화, 도지사 권한 집중에 따른 신속한 행정 등으로 각종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방과 외교 등 필수사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권한이 제주에 넘어왔다. 현재까지 5300건 이상의 중앙권한이 제주에 이양됐다.
● 군수만도 못한 시장님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문제점도 발생했다. 제주 곳곳에서 대규모 개발로 인한 환경 훼손과 난개발 논란이 불거졌고 교통·주택·상하수도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특히 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우려와 함께 제왕적 도지사, 지역 불균형 심화, 행정 만능주의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실제 고희범 전 제주시장은 2020년 6월 퇴임 자리에서 “인구 50만 명을 대표하는 시장이지만 법인격 없는 행정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행정시장은 군수가 할 수 있는 일조차 못 한다”며 “결국 기초단체가 필요하다. 당장 어렵다면 세수의 일부를 행정시가 편성하도록 하는 등의 권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경실 전 제주시장 역시 2018년 6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나의 정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짧다”며 “정책을 잘 풀어내서 시민의 품으로 돌리기에는 2년의 세월이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 20년 만에 시장님 뽑을 수 있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오영훈 지사는 2022년 7월 제주도지사에 취임하자마자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행개위)를 출범시켰다. 그는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 기자회견 때부터 “제왕적 도지사 시대를 끝내고 도민들이 기초단체장을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행개위는 도민경청회 48회, 여론조사 4회, 도민참여단 숙의 토론회 4회, 전문가 토론회 3회 등을 거쳐 올해 1월 27일 ‘기초자치단체 및 3개 행정구역 도입’을 제주도에 권고했다. 제주도를 가칭 ‘동제주시’와 ‘서제주시’ ‘서귀포시’ 등 3개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지금의 행정시 체제가 아닌 법인격을 갖춘 기초자치단체로 만드는 방안이다.
행개위의 권고를 받아들인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25일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의 연내 실시’를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정부가 제주도의 건의를 수용하면 특별자치도의 출범 계기가 됐던 2005년 주민투표처럼 올해 하반기(7∼12월) 주민투표가 다시 한번 추진된다. 특별법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도민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도지사에게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행안부가 주민투표를 수용하고 투표 결과에 효력이 발생하면 2026년 7월 민선 9기 시작에 맞춰 제주형 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하게 된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는 법인격과 자치권이 없는 현 행정시의 한계를 보완해 제주가 한 번 더 도약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제주형 기초자치단체가 설치되면 도민의 정책 참여 기회가 확대돼 도민이 주도적으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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