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례 올림픽서 은·동·금… 다 가진 ‘현대家 며느리’
LPGA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
리디아 고(27·뉴질랜드)는 금메달을 확정 짓는 버디 퍼트를 넣고 눈물을 쏟았다. 시상대에서도 또 울었다. “지난 2022년 시즌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많이 울었죠. (당시) 인생과 골프에 대한 관점을 바꿔준 약혼자(지금 남편 정준씨)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있는 걸 보고 감정이 북받쳤어요. 오늘은 남편이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감정이 교차해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이 제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11일(이하 한국 시각) 프랑스 기앙쿠르 르 골프 나시오날(파72·6374야드)에서 막을 내린 파리 올림픽 여자 골프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 골프 각종 최연소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골프 천재 리디아 고를 위한 대관식이었다. 리디아 고는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2위 에스터 헨젤라이트(8언더파·독일)를 2타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린시위(7언더파·중국)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양희영(35)은 8년 전 리우 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 공동 4위(6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고진영(29)과 김효주(29)는 나란히 공동 25위(이븐파)였다. 박인비(36)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에 이어 다시 노메달에 그쳤다.
리디아 고는 올림픽 금메달로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가입(27점)에 필요한 마지막 1점을 채우며 최연소(27세 3개월) 가입 기록도 세웠다. 이전 기록은 박인비 27세 10개월이었다. 리디아 고는 메이저 2승을 포함해 LPGA 투어 20승을 거뒀고 올해의 선수상과 최저 타수상을 각각 두 번씩 탔다. 일반 대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주요 부문 수상 포인트는 1점, 메이저 우승은 2점이다. 리디아 고는 또 올림픽 골프 사상 처음으로 3회 연속 메달(은·동·금 순)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박인비에 이어 은메달을,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딴 바 있다.
리디아 고는 올 시즌 개막 전 “파리 올림픽을 기대한다. 금메달을 획득해 모든 색깔 메달을 수집하는 동화 같은 결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동화를 현실로 이뤄낸 셈이다. 리디아 고는 “‘결말을 스스로 쓸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말을 되뇌며 경기에 집중했다”며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파리 올림픽 기계체조 3관왕에 오른 바일스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뛰어올라’에서 한 말이다. 바일스는 2020 도쿄 올림픽 경기 중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기권하는 모습으로 충격을 주었지만 파리 올림픽에서 복귀 드라마를 썼다.
그는 1997년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에 이민을 갔다. 15세이던 2012년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다. 2014년 LPGA 투어에 데뷔해 그해 3승을 비롯해 2015년 5승, 2016년에는 4승을 거뒀다. 2015년 최연소 여자 골프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2017년 0승, 2018년 1승, 2019년 0승.
그러던 리디아 고 골프 인생을 바꾼 이는 2022년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외아들인 남편 정준씨다. 현재 스윙 코치인 이시우씨 소개로 만났다. 그는 정준씨와 만난 직후인 2021년 4월 롯데 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L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하면서 재도약 시동을 걸었다. 이듬해 2022년 3승을 올리며 5년 5개월 만에 세계 1위 자리에 복귀했다. 리디아 고는 “정준씨가 제 얼굴에 미소를 갖게 해줬다.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싶어졌고 골프를 더 즐기게 됐다”고 했다. 오직 골프밖에 모르던 그에게 삶의 관점을 바꿔 놓은 만남이었다고 했다. 결혼 후 안정을 찾나 싶던 리디아 고는 지난해 무승에 그쳤다. 올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한 이후에도 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다.
리디아 고는 “내가 부담을 가질 때마다 어머니와 남편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든 오르지 않든 이미 자랑스럽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파리로 떠나기 전 남편 정준씨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흘간 코치 이시우씨와 마지막 연습을 했다. 실수를 해도 한 방향으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퍼팅도 티샷도 왼쪽으로 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했다. 남편 격려를 받으며 파리로 출발했다.
리디아 고는 “이번 주에 경기에만 집중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도 없애고 금메달 도전을 즐기려고 했다. 갤러리들도 정말 멋졌고 이렇게 흥분된 적이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했다. 시아버지인 정 부회장은 이번 대회 기간 현장을 찾아 인스타그램에 며느리 사진을 줄기차게 올리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정 부회장은 리디아 고 우승 직후 “가족 중 한 명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펼쳤다. 자기 일에 이토록 진심이니 오늘은 존경심을 가지며 따라다녔다”라는 글을 올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협 비대위 “2025년 의대모집 중지하라”
- 아내와 다투다 홧김에...6m 다리 아래로 뛰어내린 60대 남편
- 현대차 차기 CEO 호세 무뇨스 “트럼프 행정부 어떤 규제에도 준비돼 있다”
- “북한군 실수로 드론 추락... 동료 군인 사상자 다수 발생”
- “폐지 줍는 줄”…리어카로 건물 앞 택배 훔친 남성
- X에서 베이조스 직격한 머스크... “트럼프 대선에서 질거라고 했다며?”
- S. Korea’s stock market faces decline as investors shift to crypto
- Google accused of paying Korean game developers to protect market dominance
- “러시아, 우크라 영토 세 구역으로 분할 구상”
- [속보] ‘자녀 입시 비리’ 조국 12월 12일 대법원 선고...기소 5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