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부동산 PF 사태와 감독당국의 책임

2024. 8. 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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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부동산 PF 대출 사태에는
'게임 룰' 정한 감독당국도 책임
충당금 쌓기 '비상' 걸린 제2금융권
적립 기준은 사전에 결정돼야
연체율 올랐다고 확충 요구는 '무리'
'심판' 자성이 사태 해결의 '전제'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前 한국은행 부총재보

티몬·위메프 사태 피해 규모가 1조원을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감독당국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크고 고질적인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다. 감독당국이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는 이유다. ‘정상’ 사업장엔 자금 지원을 지속하고, 부도 우려가 큰 곳은 경·공매 등으로 정리하는 게 골자다. 우선 옥(玉)과 석(石)을 가려야 한다.

감독당국은 PF 사업성 평가 기준을 기존 3단계(양호·보통·악화)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 우려)로 세분화했다. 새로 등장한 ‘부실 우려’ 단계가 눈에 띈다. 대출액의 75%까지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종전 3단계 아래에선 20~30%만 적립하면 됐다. 증권·저축은행·캐피털 등 제2금융권은 충당금 쌓기에 비상이 걸렸다.

제2금융권은 PF 대출을 마구 늘려온 책임이 크다. 장기간의 저금리로 고유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부동산 개발 수요 확대에 편승한 것이다. 그렇지만 감독당국도 PF 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신전문금융회사·저축은행이 매년 취급할 수 있는 가계대출 규모에는 상한이 있다. 반면 속성상 기업 대출인 PF 대출은 규제가 덜하다. 보험사의 부동산 직접투자 한도는 총자산의 25% 이내지만 PF 대출에는 제약이 따로 없다. 대형 증권사는 PF 대출에 대한 인센티브가 지나치게 크다. 일반 증권사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가 100%인데 대형 증권사는 18%다. 이렇다 보니 비은행권에서 PF 대출이 늘어난 것은 필연에 가깝다. 감독당국이 PF 대출 확대를 방조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수습이라도 세련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근 벌어지는 일을 보면 가뜩이나 힘에 부치는 금융회사에 버거운 짐을 지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2023년 저축은행권 순손실이 5700억원이다. 올 상반기에만 순손실 예상액이 5000억원이다. 수신기능이 없는 캐피털사(여신전문금융회사)는 돈 빌릴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지만 누워 있는 환자에게 아령 운동 처방은 무리수다.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부과와 부실 PF 대출 경·공매 압박이 그렇다.

불경기엔 대출 연체율이 오르기 마련이다. 대출 자산의 질이 떨어지고 금융회사 영업이익은 감소한다. 경기가 좋을 땐 반대가 된다. 대손충당금은 대출금 회수가 어려울 때를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이다. 충당금 적립 기준은 장기간에 걸친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에 결정돼야 한다. 연체율이 올랐다고 느닷없이 더 쌓도록 요구하는 건 아픈 환자에게 아령 운동을 강요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경·공매 방식을 두고도 잡음이 크다. 부동산 시장 회복을 바라며 버티는 저축은행을 당국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3개월’마다 진행하던 연체 PF 채권 경·공매 회차 간격을 ‘1개월’로 줄였다. 그렇다고 경매 낙찰률이 크게 오를까. 경매가는 유찰될 때마다 떨어진다. 기다리면 더 헐값에 살 수 있다. 구매자가 선뜻 나설 리 없다. 시간이 갈수록 저축은행 손실만 커지는 구조다.

충당금 추가 부과와 경·공매 압박의 공통점이 뭘까. 저축은행에서 돈 빌린 차입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이다. 서민,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서 ‘비 올 때 우산 뺏는 일’이 벌어지는 거다. 불경기에 대출이 줄면 경기하강 속도가 더 가팔라진다.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 리스크다.

감독당국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은행권을 향해서는 ‘경기대응완충자본’을 쌓도록 했다. 최근 몇 년간 은행권은 대출을 늘려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급증한 여신의 미래 부실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순응성을 줄이려는 당국의 의지가 비은행권에는 안 보인다.

PF 시장 참가자는 감독당국이 깔아 놓은 ‘운동장’에서 게임을 한다. PF 사태는 생존게임의 결과물이다. 플레이어만 닦달한다고 경기 진행이 잘되는 게 아니다. 상황이 악화하자 완력을 휘두르는 뒷북 정책으로 비친다. 심판도 자신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플레이어가 판정에 승복하지 않겠나. 책임을 인정하는 자기 성찰. ‘질서 있는 부동산 PF 연착륙’의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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