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영업 기밀’ 될 수 없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공포증이 확산되자, 현대차가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전기차 전 차종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13개 차종 중 1개만 중국 CATL 제품이고, 나머지는 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도 곧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면 지난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를 일으킨 벤츠를 비롯한 수입차들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가 전기차 화재 예방책이 되는 건 아니지만, ‘소비자 안전’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수입차 제조사가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배터리 제조사와 제원, 과거 배터리 화재 통계 등을 알게 되면 화재 사고 대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유럽은 각각 2026년, 2027년부터 법적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의무화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배터리 제조사나 원산지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 행위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테슬라·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 등 대다수 메이저 자동차 기업들은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低價) 배터리 장착 사실을 감추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청라 화재 사고를 낸 벤츠 전기차는 고가 승용차인데도 배터리는 인지도 낮은 중국업체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진화가 어려워 인천 청라 사고처럼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위험이 있다. 정부는 모든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가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한편,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전기차 화재 사고와 관련된 자동차 종류,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도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50만명이 넘는 전기차 소유자들이 자기 전기차의 화재 위험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고 앞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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