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34m의 쓰나미가 온다면
일본인에게 예전에 없던 불안한 명절이 시작됐다. 8월 15일은 일본에선 우리나라 추석과 비슷한 오봉(お盆) 명절이다. 일본인 대다수는 일주일간 고향을 찾아 명절 연휴를 갖는다. 올해는 귀향의 들뜬 분위기가 사라졌다. 일본 기상청이 8일 ‘난카이(南海) 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평상시보다 여러 배나 커졌다’는 거대 지진주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발생 시 사망·실종자가 최대 23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지진이다. 일본 언론들이 ‘평상시보다 여러 배’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가운데 한 방송사는 “0.5%의 발생 가능성”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연휴 첫날인 10일, 와카야마현 시라하마쵸(町)는 마을 축제인 불꽃놀이를 중지했고 해수욕장 4곳도 폐쇄했다. 시라하마쵸는 난카이 대지진 시뮬레이션 때 4분 만에 최대 16m의 쓰나미가 올 것으로 예측됐다.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市)도 오는 15일까지 해수욕장을 폐쇄했다. 아예 ‘미리 피난 가라’는 곳도 적지 않다. 고치현 구로시오쵸는 피난소 29곳을 만들고 ‘고령자 피난 경보’를 내렸다. 쓰나미 때 스스로 피난 못 가는 고령자나 장애인들에게 미리 피난소에서 살라는 것이다. 구로시오쵸는 시뮬레이션 때 10층 건물의 높이에 달하는 최대 34m의 쓰나미가 예상된 마을이다. 고치현 난코구시도 사전 피난 경보를 내렸다. 도쿄도(都) 니지마무라(村)는 공무원들이 고령자 50여 명의 집을 돌며 사전 피난을 권유하고 있다. 대지진 시 17분 만에 최대 28m의 쓰나미가 예측되는 마을이다.
공포 속에서도 도쿄역과 하네다공항에는 귀향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지진 위험이라고 고향에 안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인 뇌리엔 올해 1월 1일 설날에 34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노토반도 지진이 선명하다. 당시 지진 현장 취재를 갔다가 한 피난소에서 명절을 보내는 가족을 만났다. 90대 할머니와 60·70대인 아들·며느리, 손자·손녀까지 8명이었다.
겹겹이 깔아놓은 종이 골판지 위에서 3일째 생활 중인 할머니는 “고향에 온 장남이 반쯤 붕괴된 집에서 이불을 갖고와, 어제는 따뜻하게 잤다”고 했다. 수도·전기가 끊어진 상황이라 ‘배고프지 않냐’고 묻자 “마침 설날이라 오세치가 잔뜩 있어 큰 지진에도 배 안 곯고 있다”며 웃기까지 했다. 오세치는 설날을 위해 미리 요리해 여러 찬합에 담아 놓은 찬 음식이다. 가족 아무도 안 죽었고 같은 이불 속에 있으니 할머니는 그래도 만족인 듯했다.
“일본 여행 취소하는 게 낫겠냐”는 지인의 카톡 질문에 “걱정되면 안 오는 게 맞는다”는 답을 보냈다. 돈 들이고 쉬려는 여행인데 일본 현지의 0.5%의 지진 위험까지 질 필요는 없으니까. 부디 이웃 일본인들이 15일 오봉 명절 때 온 가족이 부모님 댁의 따뜻한 밥상에서 도란도란 담소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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