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위협, 엔 캐리 트레이드의 실체와 그림자 금융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4. 8.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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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기반 자산가격 변화에 민감
금리보다 환율 변동성 커…취약
美·EU 긴축 이후 엔캐리 수요 ↑
글로벌 자산시장 구석구석 침투
통계없어 규모·포지션 파악불가
ETF·옵션도 청산 방아쇠 당길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 건전성은 크게 개선됐다. 빚과 부실에 대한 경계가 높아지면서 위기 대응 능력(자본 비율, 충당금 요건 등)도 강화됐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금융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예상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지난해 미국의 지방은행 위기 가 짧은 시간 일단락된 것은 그 좋은 사례다.

빛이 밝아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림자 금융(Shadow Financing)이 급격히 발달했다. 중국 부동산 거품과 우리나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그림자 금융이 유발한 문제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킬 그림자 금융 사례는 엔 캐리 거래(YCT, Yen carry trade)일 듯하다.

“엔 캐리 거래는 이자가 거의 없는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후 전세계 주요 자산에 투자하는 방법이다”

국내 미디어들의 설명은 대부분 여기에서 그친다. 하지만 YCT의 의미는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장 중요한 세 가지만 따져보자.

하나, YCT는 차익거래(arbitrage)이자 차입(leverage) 거래다. 빚으로 투자 규모를 늘려 수익을 극대화한다. 0.5% 금리로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후 5.5%짜리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 5%포인트의 차익거래 수익이 가능하다. 이자부담이 거의 없어 차입으로 투자 금액을 2배로 늘리면 원금 대비 수익률은 10%까지 늘어난다. 반대로 YCT로 산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차입 배율만큼 손실도 불어난다. YCT는 금리와 자산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둘, 환율이다. 1달러가 130엔일 때 100만 달러(1만 3000만 엔)를 빌려서 해외에 투자했다고 치자. 1달러가 150엔이 됐다면 1만 3000만 엔을 갚을 떼 86만 666달러만 환전하면 된다. 13% 이상 환 차익이 발생한다. 반대로 1달러가 110엔이 됐다면 그만큼 환 손실이다.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더라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환 차익을 피하기 위해 빌린 돈을 서둘러 갚을 필요가 커진다. 환율은 금리의 영향을 받지만 변동성은 훨씬 크다. YCT는 차입이 수반된 투자다. 작은 위험에도 민첩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통화정책에서 일본의 긴축과 미국의 완화가 충돌해 엔화의 변동성을 극단적으로 키운다면 YCT의 급격한 포지션 변화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셋, YCT의 거래 주체다. YCT와 함께 유명해진 말이 ‘와타나베 부인’이다. 와타나베는 일본의 개인 외환 투자자들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개인투자자들만 YCT를 이용했을까? 개인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기관투자자가 먼저 뛰어들었을 게 뻔하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YCT 규모를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지만 흐름을 추정할 지표는 있다. YCT는 외화대출을 수반한다. 일본 은행들의 외화대출 규모는 올 3월말 1조 달러로 2021년 대비 21%나 늘었다. 비교 시점이 2021년 말인 이유가 있다.

2022년 전세계가 긴축에 나설 때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했다. 2021년까지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저금리 차입을 할 수 있었지만 2022년부터는 일본에서만 가능했다.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swap)를 체결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발행하는 엔화를 언제든 달러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제로 금리가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양적 완화와 비슷한 영향력을 갖는 이유다.

차입을 통한 차익거래를 노리는 헤지펀드들이나 은밀한 수익을 추구가는 거액 자산가들의 패밀리오피스(FO)도 엔 캐리를 선호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본 증시 급등은 물론 미국의 기술주 급등에도 배경에 YCT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미국 기술주와 YCT로 추정되는 자금의 움직임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YCT가 다양한 주체를 통해 글로벌 자산시장 구석구석 도달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규모와 포지션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실체도 알 수 없고 파급효과도 예측이 애매하다.

과거 금융위기의 공통점은 ‘△빚이 늘어나면서 △자산가격이 크게 오른 때 △’문제 없을 것’이란 안일함이 지배했다’로 요약된다. 비우량주택저당채권(subprime mortgage) 사태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차입을 기반으로 한 투자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는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까지 타격을 입으며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YCT의 청산(unwind)은 위험(risk) 보다 불확실성(uncertainty)에 가깝다. YCT가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거시경제 환경과 통화정책이 요동치는 시기다. YCT 자금이 이런 저런 변수들과 연쇄적으로 반응해 시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YCT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주장들이 있다.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해 신뢰도가 떨어진다. 설령 YCT 청산이 많이 이뤄졌다고 해도 시장을 위협할 복병은 다양하다. 이런 복병들은 YCT와 함께 연쇄반응을 일으킬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비중이 커지면서 시장 움직임을 추종하는 자금의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시장의 방향을 정하기 보다는 정해진 방향으로의 쏠림을 부추기는 성향을 띈다. 최근 미국 증시 상승 과정에서 투기적인 개별주식 옵션 투자가 성행했는데 주가 전망이 어두워지면 하락을 부추기는 포지션이 될만하다. YCT가 매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더라도 다른 요인들에 의해 당겨진 방아쇠가 다시 YCT를 자극해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 시장이 급팽창했다. 금융 부문이나 자산 시장에서 위기가 터지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은 안도하기 보다는 경계를 극도로 높일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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