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2] 아침
아침
네팔의 라이족은 손님이 떠난 후 비질을 하지 않는다
흔적을 쓸어낸다 생각해서
손님은 떠나기 전 직접 마당을 쓴다
자기가 남긴 흔적 스스로 지우며
폐가 되지 않으려 애쓴다
깨끗한 마당처럼만 나를 기억하라고
쓸어도 쓸어도 쓸리지 않는 것들로
마당은 더럽혀지고 있었고
어차피 더럽혀지는 평생을 평생
쓸다 가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듣기 좋은 건
아침에 마당 쓰는 소리
언제나 가장 좋은 건
자고 일어나 마시는 백차 한잔
산중에 휴대폰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 「인동차」, “산중에 책력도 없이/삼동이 하이얗다.” 변용.
-황유원(1982-)
하룻밤을 묵고 나면 그곳엔 머문 흔적이 당연히 남는다. 객실(客室)에도 마당에도 그리고 나를 손님으로 들인 그 집 주인의 마음속에도 나의 언행과 동선(動線)과 자취가 고스란히 남는다. 이 시에 등장하는 네팔 라이족의 집에 숙박한 손님은 그곳을 떠나기 전 아침에 마당을 직접 비질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고 하니 참 근사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또 이러한 방식은 어쩌면 종교적인 수행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괴로움을 끼치는 일을 삼가는 것이고, 또 소란스럽게 했거나 스스로 격앙되었던 것을 처음의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와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기도 하겠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이 시에서처럼 하나의 공간으로 그 인상을 간직하는 일도 운치가 있을 테다. 비질을 막 끝낸 정갈한 마당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여름날에 큰 나무가 드리운 시원한 그늘로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계곡의 맑고 푸른 소(沼)로 그 사람을 기억한다면 꽤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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