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본업천재’가 쏘아올린 셔틀콕
배드민턴협회 부당 관행 지적
차제에 시스템·문화 돌아보고
개혁할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
나는 배드민턴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파리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드민턴도 탁구 못지않게 생활 체육으로 꽤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배드민턴 동호인이 200만∼300만명에 달한다는 추정치도 있다.
안세영 선수는 2022년을 기점으로 허빙자오, 천위페이, 야마구치 아카네 등 중국과 일본의 천적들을 하나씩 제압하고 2023년 여름 세계 랭킹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절제된 경기 스타일과 강철 체력이 뒷받침되다 보니,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압도적 경기를 통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켜보던 국민은 전율했다. 안세영 선수의 압도적 기량 덕에 가슴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경기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덤이었다.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를 겨냥해 ‘원영적 사고’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런 것처럼, 다양한 ‘부캐’가 각광 받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업에 몰입하고, 이 속에서 승부를 보려는 자세는 ‘세영적 사고’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경기장 밖에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고 인기를 구가하는 젊은 선수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팬덤과 더불어 아이돌의 음반 판매와 음원 순위가 올라가듯, 팬층이 두꺼워지면 분명 선수도 힘을 얻고 경기력도 향상되는 게 이치이다. 하지만 체력과 운동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체육 분야에선 결국 실력이 모든 걸 말해 준다.
금메달의 기쁨을 뒤로하고, 안세영 선수는 협회의 부당한 관행에 대해 파격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공론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성급한 문제 제기라는 시각도 있지만, 선수 관리, 소통방식 등과 관련된 협회의 시스템과 관행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실제 안세영 선수는 분노가 원동력이었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 악착같이 금메달을 땄다고 했다. 이러니 부당함에 대한 ‘폭탄선언’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스스로에게 가혹할 만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에 나선 것이다.
안세영 선수의 충격 요법과 ‘서툰’ 소통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국민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안세영 선수가 알고 있는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진함과 서투름을 빌미로 단죄에 나선다면 과연 어떤 선수가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현재 온라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세영 선수를 향한 ‘조직적인’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네가 손흥민이냐’는 식의 ‘꼰대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협회는 잘못한 게 없다고 큰소리를 낸다. 조금 서툰 부분이 있어도 용기 내지 않으면 바뀔 수 없고, 서투름을 포용할 수 없으면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안세영 선수는 ‘본업천재’답게 이 사태를 거치면서 많은 학습을 하고 있다. 점차 말을 아끼고 주위의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대중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동료뿐 아니라 경쟁자까지 포용하고 위로하는 게 원래 안세영 선수의 DNA였다. 우리가 경기장에서 무수히 봐왔던 장면 아닌가. 안세영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 응원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 준비해서 우리에게 전하게 될 메시지도 자못 궁금하다.
배드민턴 협회와 체육계는 이번 사태를 시스템과 문화를 돌아보고 개혁하는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목소리를 더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뿌리내려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결과를 넘어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시스템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본업천재가 쏘아 올린 셔틀콕을 어떻게 살려갈 수 있을지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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