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힌 교실이 특산품 매장·객실로 탈바꿈…연간 90만명 찾아 ‘농촌 활력’[일본 위기도시를 가다]
도로 접근성 높인 시골 폐교
카페·식당 개조 관광객 유치
저출생 타격 딛고 생기 찾아
일본 지바현 아와군의 농촌 마을 교난 지역은 저출생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2000년대까지 1만명 안팎을 유지했던 인구는 현재 67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1888년 개교해 126년간 마을을 지킨 호타초등학교도 2014년 끝내 문을 닫았다.
이듬해 12월, 마을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폐교한 호타초교가 1년간 개·보수를 거쳐 다시 문을 연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도로역’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도로역은 ‘안전하고 쾌적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도로교통환경을 제공하고, 지역의 활력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시설’(공식홈페이지)을 뜻한다. 철도역에 빗대 만든 용어로, 한국의 도로 휴게소와 외형은 비슷하지만 역할이 다르다.
대부분 국도에 인접해 설치되는데, 지역 친환경농산물·특산품 판매를 기본으로 숙박·식사·농장체험 등 관광, 지역 커뮤니티, 지진 대피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1993년 전국 103곳에 도로역이 개설된 이후 지난해 기준 1209개로 12배가량 늘었다.
호타초교 도로역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지역민의 바람이 반영돼 세워졌다. 정부·지자체가 12억엔가량의 지원금을 투입했다.
지난달 24일 찾은 호타초교 도로역은 성수기를 맞아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교사동 1층에는 관광 종합안내소와 레스토랑, 카페가 들어섰다. 레스토랑 식사는 초등학교 ‘급식’ 메뉴를 제공했고, 카페 역시 학교 소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학교 종소리를 울려 ‘학교’의 정취를 더했다.
2층 교실은 숙박 시설로 개조했다. 2~4인실 객실 10개를 비롯해 단체 관광객을 위한 15인실 객실도 갖췄다. 책걸상, 칠판이 있는 교실 ‘객실’은 방문객에게 익숙하고도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왔다.
자녀와 함께 방문한 기쿠치(지바)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입학 예행연습을 위해 숙박을 했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관은 마을 주민의 이름표를 붙인 농산물 직거래 장터로 쓰인다. 유통 과정을 축소해 가격이 저렴한 데다 질이 좋아 농산물 구입을 위해 오는 방문객도 늘고 있다.
방문객 비중은 지역 주민 10%, 외부 관광객 90% 정도로 순수 도로역 방문객만 연간 90만명에 달한다. 교난 지역 전체 방문객은 한 해 160만명 정도로 도로역 설립 이전보다 60만명 정도 늘었다.
지역 일자리도 만들어내고 있다. 호타초교 도로역 내 식당과 카페 등 시설에서 일하는 지역 주민은 1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는 폐원한 부속 유치원도 도로역 시설로 확장했다. 유치원 콘셉트를 살려 놀이 공간과 함께 ‘초딩 입맛’을 겨냥한 음식점도 들어섰다. 벤처 기업 사무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유 업무 공간도 조성했다.
호타초교 운영사 교리츠솔루션스의 나카무라 야스시 부소장은 도로역 성공 비결에 대해 “지역마다 처한 문제가 다른 만큼 지역 사정에 맞춰 도로역 테마를 정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특히 관할 지자체와의 지속적인 협업은 필수”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지역 상생모델로 안착하자 한국도 벤치마킹했다. 2017년 충남 태안군은 남면 당암리 일대에 공익형 휴게소 ‘도로역’ 건립을 공식화하고 2019년 ‘태안 농수산물센터’를 준공했다. 하지만 이 센터는 관광·지역 커뮤니티 등 복합 기능을 갖추지 못해 사업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호상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는 “도로역의 핵심은 농수산물 직거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활발히 오가면서 지역 공동체가 재편되는 것”이라며 “태안 도로역은 농수산물 판매에 치중하다 보니 차별성 없는 휴게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에서 단기간 출장을 통해 겉모습을 따라 만든 결과”라며 “지역 전문가를 통해 지역 환경과 당면한 문제를 정교하게 연구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바 | 글·사진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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