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재앙급’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화재는 8시간 20분이 지나서야 겨우 진압 성공
리튬이온배터리와 지하주차장 등 특성 맞물려
대형 화재 일으킬 수 있는 최악 조건 만들어져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국내에 벌써 50만 대가 넘는 전기차가 보급됐습니다. 차량 수가 늘어난 만큼 관련 사고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요.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0건입니다. 2018년 3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가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늘어났죠. 사실 전기차의 화재발생률은 0.013%로 내연기관차(0.016%)와 크게 차이가 나진 않지만, 한 번 시작되면 자동차 전체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 불길 때문에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지하 1층에 주차돼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시작된 화재로 차량 40여 대가 전소됐고, 100여 대가 손상됐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20여 명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아파트의 전기·배관 시설이 손상되는 바람에 480여 세대의 전기와 1500여 세대의 수도가 끊겼습니다.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는 초고온 열폭주 현상으로 인해 아파트 구조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지하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 갑자기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 16분께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문제의 차량을 주차한 이후, 불이 난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께까지 59시간 동안 어떠한 접촉이나 외부 충격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흘 가까이 주차돼 있던 차량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한 것. 게다가 전기차 충전소가 아닌 일반 주차 구역에 주차돼 있었고, 주차 후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충전 행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배터리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도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죠.
불은 소방당국이 출동한 후 8시간 20분이 지나서야 겨우 진압됐습니다. 화재 진압을 어렵게 한 요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리튬이온배터리가 사용된 전기차의 특성 ②소방장비 진입이 어려운 지하주차장의 특성 등이 맞물려 대형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 만들어졌죠.
전기차 바닥에는 90~100개의 리튬이온배터리가 내장돼 있습니다.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 둘 사이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존재합니다. 양극과 음극이 부딪히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분리막을 통해 둘 사이를 떨어트려 놓는데,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과 음극이 만나게 되면 ‘열폭주 현상’으로 화재가 발생합니다. 배터리 한 개에서 열폭주가 시작되면 다른 배터리에도 불이 옮겨 붙으며 연쇄적으로 화재를 일으킵니다. 불은 내장된 배터리를 모두 태우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데, 이 때문에 전기차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배터리의 연쇄 발화뿐만 아니라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철로 만들어진 차의 바닥 부분도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듭니다.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철로 만들었지만 화재 발생 시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죠. 뚫을 수도, 뜯어낼 수도 없는 강철판 안으로는 물을 집어넣기 힘들기 때문에 배터리 열폭주가 일어나면 외부에서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화재 진압이 힘듭니다. 그래서 보통 전기차 주변에 이동식 수조를 설치한 후 차량을 통째로 물에 가둬 불을 끄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동식 수조는 지하에선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동식 수조와 같은 대형 장비는 지하주차장에 들어오기 어렵고, 설치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소방차가 진입하거나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어 화재에 취약한 구조입니다. 자욱한 연기와 환기가 불가능한 환경, 소방차·소방장비 진입의 어려움은 화재 발생 시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신축 아파트 대부분은 미관상의 이유나 보행자 안전, 주차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지하주차장만 두고 있죠.
동의과학대 김만호(자동차과) 교수는 전기차는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전기차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생긴 이유는 배터리 열폭주 문제도 있지만, 배터리를 보호하는 강철판으로 인해 화재 진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이동식 수조를 이용해 열을 식히는 방식으로 불을 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지하주차장과 같이 이동식 수조 등 대형 소방장비가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 불이 났을 때도 화재 진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전기차를 만들 때부터 강철판에 화재 진압용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구멍을 통해 물을 주입해 불을 끌 수 있도록 해야 하죠. 그리고 화재가 발생하면 내부에서 자동으로 소화(消火) 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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