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피의자 신문 영상, 증거 채택을
티몬·위메프 사태의 주요 피의자들이 다음주부터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를 받는다. 어쩌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피의자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절차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실에 앉아 컴퓨터를 앞에 두고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영상조사실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며칠을 공들여 만드는 이 신문조서나 영상녹화물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희한한 현행 형사소송법 때문이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의 뿌리인 독일은 몇년 전에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을 기존의 피의자 신문조서처럼 증거로 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피의자 신문 영상을 녹화하면 신문 과정과 내용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기록할 수 있어서 사건 진실 규명과 피의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개정의 주요 이유이다.
특히 피의자가 정신적 제약이 있거나 중대한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 예외 없이 피의자 신문 영상을 녹화하도록 하고 있다. 신문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한 피의자의 중요한 몸짓이나 무의식적 반응을 영상으로 보존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을 줄이고, 수사와 재판을 지연시키는 군더더기 행정 낭비를 덜기 위함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한참 뒷걸음 중이다. 2019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졸속 처리되면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었다. 이 개정으로 이제는 피의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은 한낱 보조적인 증거로도 쓸 수 없어졌고, 피의자 신문조서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한 주체가 경찰이건 검찰이건 상관없이 조서가 증거기록에서 허무하게 빠져버린다. 이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여 시행을 미뤘지만, 별다른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202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아도 피고인의 한마디에 조서 자체가 버려지는 현실 속 수사기관의 자괴감과 세금 낭비를 책임지는 입법자가 없다. 형사사법체계가 정치 싸움에 왜곡되면서 범죄자의 혐의만 더 입증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피해자의 시름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법에 따라 피의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조서를 열람할 시간을 충분히 보장받는다. 열람 후 그 조서가 자신이 진술한 그대로 적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 옆에 이름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렇게 직접 피의자가 확인을 마친 피의자 신문조서는 그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대안으로 마련했다는 조사자 증언제도는 무용지물이다. 피의자의 사건 초기 생생한 진술이 담긴 문서나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그 피의자를 조사한 경찰이나 검찰 사건 담당자를 한참 뒤에 법정에 불러 사건의 실체를 물어보겠다는 것인데, 효율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아서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문 과정을 담은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제출하게 하면 법정이 동영상 상영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과도한 걱정이다. 증거 현출의 방법을 합리적으로 마련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영상 속 음성을 즉시 문자로 자동 변환하는 기술이 상용화된 지 오래다.
영상녹화물을 본증으로 제출하도록 허용하는 것에 숙고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피고인의 거짓말을 드러내어 탄핵할 수 있는 보조적 기능만큼은 속히 되살릴 필요가 있다. 수사 과정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담고 있는 영상녹화물을 재판에서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 진실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소송법의 본질에 맞으므로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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