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잡초

기자 2024. 8. 1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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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면 잡초의 세상이 온다. 한여름엔 잡초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따라갈 수 없다. 은퇴 전 마지막 콘서트 투어 중인 나훈아(사진)는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가수가 된 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 갈 텐데/ 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

1982년 이 노래를 발표하기 전 나훈아는 서울 동부이촌동 서울스튜디오에서 신곡 발표회를 가졌다고 한다. ‘잡초’와 ‘울긴 왜 울어’ 중에서 어떤 곡을 타이틀로 할 것인지 참석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울긴 왜 울어’가 타이틀곡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잡초’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부산 태생의 나훈아는 보수적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 지인의 사무실 의자에서 잠을 자면서 데뷔를 꿈꿨다. 그 당시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오아시스레코드 사무실에 사환으로 들어간 나훈아는 사무실 청소는 물론 작곡가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기회를 엿봤다.

1968년 나훈아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장충동 녹음실에 갔다. 그날 취입 예정이었던 이모 가수가 나타나지 않자 녹음실 관계자들이 심심풀이로 나훈아를 마이크 앞에 세웠다. 투박한 경상도 촌놈의 노래에 반한 오아시스레코드 손진석 사장이 즉석에서 노래 취입을 결정했다. 실로 ‘잡초’와 같은 인생역전이었다. 은퇴를 결심한 그의 앞길을 막긴 어려워 보인다. 대신 잡초 같은 인생 얘기는 다음 세대에게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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