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들개 공포

김태훈 논설위원 2024. 8.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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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양진경

제주도 한라산 자락은 대표적인 들개 서식지로 꼽힌다. 2021년 조사해 보니 약 2000마리가 해발 200~600m의 한라산 자락에서 살았다. 상당수는 뭍에서 놀러 간 이들이 버린 유기견이다. 들개는 닭·오리뿐만 아니라 송아지·망아지처럼 큰 동물도 잡아먹는다. 어느 해엔 가축 약 850마리가 물려 죽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사냥 행위 자체를 즐기는 잔혹한 습성도 있다. 몇 해 전 수도권의 한 양계장에 들이닥친 들개 떼는 먹지도 않을 닭 1000여 마리를 물어 죽이고 사라졌다.

▶사람도 들개의 공격 대상이다. 엊그제 부산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던 60대 남자가 들개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았다. 팔다리를 문 채로 머리를 마구 흔드는데 “내가 오늘 죽는구나” 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연초에는 20대 청년이 얼굴을 물려 50바늘이나 꿰매는 화를 당했다. 떼 지어 다닐 때는 더욱 대담해진다. 두 달 전 대구에선 들개 10여 마리가 아파트 단지에 쳐들어가 차를 포위하고 공격한 일도 있다.

▶들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반려동물 키우는 게 유행처럼 번진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전국 반려동물 등록 현황을 보면 2018년 130만마리에서 2022년 278만마리로 폭증했다. 등록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800만마리를 넘는다. 이 가운데 해마다 11만~13만마리가 버려지거나 분실되는데 개가 70% 이상이다. 들개가 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몸무게 10㎏ 이상인 중형견이다. 단독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마당에서 기르던 개를 유기하기도 한다.

▶들개 피해가 잦아지면서 지자체마다 포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시도 대표적인 들개 출몰 지역인 관악산과 북한산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들개 포획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유기견 10마리 중 잡히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들개는 지능이 높아 포획 틀에 미끼를 넣어도 잘 속지 않는다. 마취총에 맞아도 약 기운이 퍼지기 전에 산속으로 도망간다.

▶물러 터진 동물보호법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 법은 들개라 해도 일단 동물 보호소에서 새 주인을 찾는 절차를 거친 뒤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때만 안락사시킬 수 있다. 한 지자체는 들개를 사냥하려 했다가 동물 보호 단체의 항의를 받고 철회했다. 반면 미국에선 개가 사람을 물려고만 해도 경찰이 발포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유기견 발생 자체를 막아야 한다. 개를 당국에 등록하지 않으면 아예 키우지 못하게 해서 주인이 개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독일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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