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구글’의 시작은 이 여인의 차고였다
‘구글의 대모’로 불리던 수전 워치츠키(56)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암 투병 끝에 숨졌다. 10일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소중한 친구였던 수전 워치츠키가 2년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믿을 수 없이 슬프다”며 “워치츠키는 구글의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워치츠키의 남편인 데니스 트로퍼도 페이스북을 통해 “워치츠키가 비소세포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워치츠키는 실리콘밸리와 IT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한 명이지만, 학부부터 석사까지, 모두 문과 학위만 받았다. 1968년 7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졸업 후엔 인도의 영자 신문사에서 사진작가로 일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캘리포니아대학 샌타크루즈에서 경제학 석사를,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이후 인텔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을 때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를 만났다.
◇구글 대모에서 유튜브 CEO로
워치츠키와 구글 창업자들의 관계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시작했다. 1998년 워치츠키는 남편과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첫 집을 마련하고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차고를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사무실로 임대했다. 브린과 페이지는 차고뿐만 아니라 이 집의 방 4개 중 3개를 빌렸다. 월 1700달러의 임대료로 구글의 초기 직원들은 숙식을 하면서 온수 욕조와 세탁기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워치츠키와 남편의 신혼집은 구글의 사무실이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찍은 사진을 보면, 집 안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구글 월드와이드 헤드쿼터’(Google Worldwide Headquater·구글 세계 본부)라고 적혀있다. 훗날 워치츠키의 막내 여동생인 앤은 브린과 2007년 결혼한 뒤 2015년 이혼했다.
브린과 페이지는 임신 5개월이었던 워치츠키에게 구글 입사를 제안했다. 대학원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은 워치츠키는 안정적인 직장인 인텔을 나와 수익이 한 푼도 없던 구글에 입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구글의 16번째 멤버로 합류한 워치츠키는 엔지니어나 개발자가 아니었지만 구글의 변화를 이끌었다. 구글 로고 뒤에 붙어있던 느낌표를 떼고 구글의 상징적인 첫 화면인 ‘두들’을 만들었다. 이후엔 콘텐츠 제작자와 구글 간 광고 수익을 나누는 프로그램인 구글 애드센스를 기획했고, 이 모델은 여전히 구글의 매출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06년 구글비디오 개발을 이끌던 워치츠키는 페이지와 브린을 설득해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구글의 미래’를 쓴 독일 언론인 토마스 슐츠는 “당시의 관점에서 정신 나간 수준의 액수였다”고 했다. 지금 유튜브의 기업 가치는 약 4000억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워치츠키는는 2014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2023년 초까지 일하다 회사를 떠났다.
◇애 다섯 키우며 ‘워라밸’ 지킨 워킹맘
워치츠키는 유튜브 CEO가 되기 전까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구글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임원이나 미디어 업계 거물들처럼 거만하지 않았다. 매우 겸손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
워치츠키는 다섯 아이를 키웠고, 막내아들이 올초 사망했다. 첫 아이를 가진 채 구글에 입사한 그는 구글의 첫 출산휴가 사용자였다. 2014년 유튜브 CEO가 됐을 땐 다섯째를 낳고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그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CEO로도 유명하다. 구글에서 동료로 일했던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워치츠키는 구글에서 워킹맘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저녁식사는 대부분 가족과 하고, 보통 일요일엔 오후 9시까지 이메일에도 답변하지 않는다. 그가 CEO에 취임한 후 유튜브의 여성 직원 비율은 24%에서 30%로 상승했다.
워치츠키와 그의 두 여동생은 미국의 엄친딸 자매로 불린다. 첫째 동생 재닛은 UC 샌프란시스코 의대 교수이자 인류학자이고, 막내 앤은 2006년 유전자 분석 기업 ‘23앤미’를 창업했다. 워치츠키의 성향이 학구적이고 문과 출신이면서 빅테크에서 승승장구한 데는 가정환경도 일조한 것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워치츠키의 아버지는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됐고, 어머니는 ‘실리콘밸리의 선생님’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교사였다. 워치츠키는 어릴 때부터 스탠퍼드대 교정에서 놀았고, 부모의 친구와 이웃들은 유명 수학자나 과학자였다. 막냇동생 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세 자매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분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컸기 때문이다”라며 “우린 어린 시절을 아인슈타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과 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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