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농심 폭발…논도 갈아엎었다
당정 안정화 대책은 땜질 ‘비판’…쌀 수입 중단도 요구, 정부 ‘당혹’
쌀값 폭락에 성난 농민들이 ‘시장격리 물량 확대’ 등을 요구하며 논을 갈아엎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5만t 매입과 소비 촉진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쌀값 안정화 대책은 땜질 처방이라며 2년 전의 쌀값 대란이 반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1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전농 부산경남연맹 회원들은 지난 9일 경남 의령군에서 3800㎡(약 1150평) 면적의 논을 갈아엎었다. 산지 쌀 한 가마(80㎏) 가격이 정부가 약속한 20만원보다 한참 낮은 17만원대로 떨어지자 항의 차원에서 한 것이다. 전농 등 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도 지난 6일 서울역 인근에서 ‘쌀값 보장 농민대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에 4만4619원, 한 가마에 17만8476원이다.
20㎏ 기준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 초반(10월5일) 산지 쌀 가격 5만4388원에 비해 18.0% 낮아진 수준이다.
산지 쌀값 하락은 소비 감소와 이에 따른 재고량 증가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6.4㎏으로 역대 최소다. 지난달 20일 기준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민간의 쌀 재고량은 51만1000t으로, 1년 전에 비해 23만t(80.7%) 늘었다.
정부는 쌀값 하락세를 멈추기 위해 지난 6월 민당정 협의회에서 밝힌 대로 쌀 5만t을 사들일 계획이다.
또 지역농협 등을 통해 소비 판촉 활동을 벌여 10만t가량을 추가로 소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농민단체들은 5만t 매입으로는 쌀값 하락을 막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강순중 전농 정책위원장은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농산물 가격을 누르고 있는 정부가 쌀값도 같은 이유에서 방치하고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5만t을 시장격리하라는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올해 수매 물량 중 5만t을 미리 수매하겠다는 땜질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들면 2022년 쌀값 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1년 쌀 재배면적 확대로 쌀 생산이 크게 늘었는데도 정부 대응이 늦어지면서 2022년 산지 쌀값은 대폭락했다. 2022년 9월5일 기준 산지 쌀값(20㎏)은 3만9321원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수확기 들어 부랴부랴 90만t을 시장격리한 후에야 산지 쌀값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농민단체들은 쌀 수입 중단도 요구한다. 정부는 2015년 쌀 시장 개방 이후 매년 40만8700t을 의무 수입하고 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308만4000t의 쌀이 수입됐으며, 구입과 관리 비용은 4조507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수입 물량을 줄일 순 없다”며 “수입쌀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밥쌀용이 아닌 가공용과 주정용으로 쓰는 쇄미(싸라기) 수입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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