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제주 돌담 시공법? 어쩌면 우주 여행 생존법

이정호 기자 2024. 8. 1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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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연구진, 달 로켓 이착륙장 ‘폭풍 차단용 담장’ 건설봇 개발
굴착기 형태의 무인 로봇이 돌을 이용해 담장을 쌓고 있다. 지구 또는 달에서 라이다(Lidar)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사람 통제 없이도 알아서 작동한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Z) 제공
로켓 이착륙 때 강한 엔진 힘 작동
월면의 날카로운 먼지 일으켜 위험
연구진, 높이 3.3m 담장 쌓기 제안
무인로봇이 원형 포위 형태로 축조
주변 방풍벽 역할로 안전 확보 기대

# 황무지 위에 사과 상자 크기의 전자 장비 몇개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성조기가 꽂혀 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돌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줄어들던 숫자가 ‘0’에 이르자 황무지가 수직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진다. 이륙한 것이다. 고도 100여m에 도달하면서 운석이 지상과 부딪치며 생긴 충돌구가 보인다. 이곳은 바로 달이다.

1971년 2월6일(미국시간)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 14호가 달 표면을 떠날 때 장면이다.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이륙 순간 주변에 몰아치는 ‘폭풍’이다. 성조기가 세차게 흔들리고, 작은 금속 조각이 강하게 흩날린다. 아폴로 14호의 엔진 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사람이 달에 갈 일이 많지 않았던 1960~1970년대에는 이런 폭풍이 큰 문제가 안 됐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과 영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달 개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라 2030년대부터 달에서는 사람이 상주하는 기지가 운영된다.

달 기지에는 사람과 물자가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로켓 이착륙도 반복돼야 한다. 이때마다 로켓 엔진 때문에 생긴 폭풍이 이착륙장 주변의 달 기지와 장비, 사람을 강타할 공산이 크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달 표면에서 몰아칠 폭풍을 ‘담장’으로 막자는 제안이 나왔다. 온갖 첨단 기술이 사용되는 우주 시대에 담장이라니, 무슨 말일까.

동그란 담장 둘러 달 먼지 방어

최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Z) 등에 소속된 연구진은 미래 달에서 기지와 장비, 사람을 보호할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스’에 실렸다. 아이디어의 핵심은 지구에서 달로 드나드는 로켓을 위한 이착륙장 주변에 담장을 쌓자는 것이다. 담장 형태는 원이다. 로켓 이착륙장을 동그랗게 포위하는 형태다.

연구진이 구상하는 담장 높이는 3.3m, 지름은 100m다. 이 정도 규모면 로켓 이착륙장 주변에서 발생하는 폭풍을 가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라 사용될 로켓인 ‘스타십’의 엔진 힘을 고려했다. 담장이 없다면 이착륙장 바깥으로 최대 수천m까지 폭풍의 힘이 미칠 수 있다.

엔진 힘에 의해 발생하는 폭풍의 충격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달 표면에 깔린 먼지, 즉 ‘레골리스’를 함께 퍼지게 할 수 있어 더 문제다. 레골리스 입자 크기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인데, 형태가 매우 뾰족하다. 날카로운 초소형 바늘이다. 달 기지와 장비에 닿으면 파손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이 들이마시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담장은 우주 시대에 어울리는 첨단 구조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담장을 만들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자 장비가 포함되지 않아 구축하기가 간단한 데다 공학적으로 ‘방어 효과’가 증명돼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바람을 막으려고 방풍림을, 파도를 막으려고 방파제를 만든다. 도심 도로에서는 차량 소음이 주변 주택가에 덜 들리게 하기 위해 방음벽을 세운다.

무인 로봇이 로켓 이착륙장 주변에 담장을 건설하는 상상도. 지름 100m 규모로 구상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Z) 제공

무인 로봇이 축조 ‘척척’

담장은 월면에 널려 있는 돌을 끌어모은 뒤 수직 방향으로 높이 쌓는 방식으로 만들 예정이다. 돌을 깎거나 다듬지는 않는다. 돌 사이에 접착용 물질도 바르지 않는다. 전통적 제주 돌담과 모양과 축조 방식이 비슷하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돌을 얹어 쌓는 방식이기 때문에 담장에는 작은 틈이 생길 수 있다”며 “레골리스나 폭풍이 담장을 통과하는 부위가 생기면 작은 돌을 더 꼼꼼히 밀어 넣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달에서 담장을 만드는 일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 굴착기 형태의 무인 로봇이 한다. 로봇은 이미 지난해 시제품이 개발됐으며, 실제 담장을 쌓는 데에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무인 로봇에 첨단 기술을 넣었다. 레이저를 쏴 전방 물체의 모양새를 알아내는 장비인 ‘라이다(Lidar)’, 팔에 달린 집게로 돌을 들면 무게 중심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장착했다.

달의 돌을 그대로 활용해 담장을 세우면 월면에서 건축용 자재를 생산해 담장을 세우는 것보다 소요될 에너지도 절반 줄일 수 있다.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가열’ 공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월면에 자재 공장을 세우자는 주장은 기존 과학계에서 많이 논의돼 왔는데, 이번에 새로운 방향의 제안이 나온 셈이다.

다만 무인 로봇은 당초 지구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만큼 주요 부품의 내구성은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달 온도는 낮에 영상 127도, 밤에 영하 173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향후 기지가 건설될 화성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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