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한국新으로 은메달... 하늘에 계신 엄마와 함께 들었다
은메달을 딴 소감을 묻자 박혜정은 “한국 가서 어머니에게 메달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산소 얘기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는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생각이 났다”면서 “어머니가 꿈에 나와 함께 놀러 갔다. 일어나니 내가 울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박혜정에겐 이번 대회에서 꼭 메달을 따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 남씨는 지난 4월 8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투병 중에도 박혜정 경기가 있는 날에는 직접 운전을 해 전국을 누비면서 응원해 왔다. 역도계 관계자는 “세상을 떠나시기 일주일 전쯤 만났는데, ‘암을 이겨내야 한다. 우리 혜정이 크는 것을 더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안 좋아지시더니 떠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박혜정은 11일 기어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나선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나를 지금 꼭 안아주셨을 텐데….”라면서 울먹였다.
박혜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미란(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역도에 입문했다. 투포환 선수 출신 어머니 남현희씨 재능을 물려받은 덕인지 빠르게 성장했다. 경기 안산 선부중 3학년 때 합계 255㎏을 들어 올려 장미란이 고2 때 세운 기록(235㎏)을 넘어섰다. 장 차관이 고3 때 합계 260㎏을 들어 올렸는데 박혜정은 고교 입학 후 첫 대회에서 267㎏을 기록했다. 성인 무대에서도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장미란(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13년 만에 여자 역도에서 일궈낸 정상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 IWF 태국 월드컵이 열리기 1주일 전이었다.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 박혜정은 상을 치른 뒤 “어머니에게 올림픽 나가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출국했다. 그리고 2위를 차지하면서 파리행 티켓을 따고 돌아왔다. 당시 대회를 마치고 “어머니가 올림픽 출전을 바라시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월드컵에 가서 이 꽉 깨물고 제대로 보여주고 왔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언니 꿈에는 나왔다는데, 아직 내 꿈에는 오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성현 안산공고 코치는 박혜정 은사다. 선부중에 있을 때부터 7년을 함께 했다. 집(수원)과 학교(안산공고)가 너무 멀어 애를 먹던 박혜정을 자기 집에서 머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조 코치 가족들과 박혜정은 남다른 사이다. 조 코치는 “혜정이는 그냥 우리 가족이다. 성격이 너무 좋아 우리 가족하고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어 “밝은 와중에도 또 속은 깊어서 힘들어도 힘들다고 티를 잘 안 낸다. 외국으로 대회 나가서 장염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말하기 전에는 몰랐다. 마음이 쓰이는 아픈 손가락이다”라고 덧붙였다.
조 코치는 박혜정 어머니와도 잘 안다. “언젠가 혜정이 어머니를 만났는데, 딸에게 늘 ‘자랑스러운 딸, 뭐를 해도 자신감을 가져라.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경 쓸 것 없다. 딸만 떳떳하면 그걸로 됐다. 올림픽 메달을 따지 못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난 건 돌릴 수 없잖니. 앞만 보고 달려라’고 말해왔다 하시더라. 지금 이 순간 어머니도 혜정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정은 “아버지와 언니가 옆에서 응원해줬고, 많은 분의 지지와 응원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Minute to Read] Samsung Electronics stock tumbles to 40,000-won range
- “주한미군 이상 없나?” 트럼프 2기 미국을 읽는 ‘내재적 접근법’
- 온 도시가 뿌옇게… 최악 대기오염에 등교까지 중단한 ‘이 나라’
- 한미일 정상 "北 러시아 파병 강력 규탄"...공동성명 채택
- [모던 경성]‘정조’ 유린당한 ‘苑洞 재킷’ 김화동,시대의 罪인가
- 10만개 히트작이 고작 뚜껑이라니?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잡은 이 기술
- 와인의 풍미를 1초 만에 확 올린 방법
- [북카페]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외
- [편집자 레터] 가을 모기
-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스위스에서 막내에게 농지를 우선 상속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