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요...마지막까지 투혼 불태운 선수들
10일(현지 시각)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이번 올림픽을 위해 “뭐라도 해야 일이 생긴다”는 일념으로 머리카락을 바친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28)은 2m31 3차시기가 끝난 뒤 매트 위에 털썩 주저앉고는 한참 동안 고개를 떨궜다. 반드시 넘고자 했던 바(bar)는 떨어져 있었다. 사실상 메달권에서 멀어진 순간. 그래도 그는 별명 ‘스마일 점퍼’답게 미소 지은 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곤 왼쪽 가슴에 있던 태극기를 툭툭 치며 지금까지 버텨온 자신을 위로했다.
한국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총(사격), 칼(펜싱), 활(양궁)’ 등으론 세계를 호령했지만, 여전히 많은 종목에선 아직 ‘도전자’로 통한다. 평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은 물론, 아예 있는지조차 모르는 ‘비인지 종목’도 있다. 대다수 선수들은 꿈의 무대에서 메달 없이 ‘숫자’만 남기고 온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여준 도전 열정에 찬사와 격려가 쏟아진다.
◇넘어져도 재도약 예고한 우상혁
우상혁은 이번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27로 7위에 머물렀다. 개인 최고 2m36의 기록을 보유한 우상혁은 그보다 5cm 낮은 2m31 벽에 막혔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2m35를 뛰어 넘고 4위에 오르며 비상한 뒤 2022 세계실내선수권 우승(2m34) 및 2023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2m35)을 이룩한 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도쿄 대회 10위였던 해미시 커(뉴질랜드)가 2m36으로 1위에 올랐고, 도쿄 12위 셸비 매큐언(미국)이 2위를 차지했다. 도쿄 1위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이 동메달을 챙기며 올림픽 여정을 마감했다.
우상혁은 경기 후 “홀가분하면서도 이 매트 위에서 오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파리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2022년, 2023년보다 올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김도균) 감독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오늘 메달을 따서 보답하고 싶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오늘 또 한 번 좋은 자극을 받았다. 내 점프의 끝은 아니다.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불꽃을 피우겠다”며 재도약을 예고했다.
◇2회 연속 입상 실패한 전웅태 “계속 근대 5종 할 것”
2회 연속 올림픽 시상대를 노린 ‘개척자’ 전웅태(29)는 이날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마련된 경기장에서 열린 근대5종 결승에서 펜싱, 수영, 승마, 레이저 런(육상+사격) 합계 1526점을 획득, 6위에 자리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근대5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던 전웅태는 이번 대회에서 내심 더 높은 자리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다. 함께 출전한 ‘아우’ 서창완(27)은 1520점을 기록, 7위로 대회를 마쳤다. 입상에 실패한 전웅태는 경기 뒤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울먹였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는 “잘 되는 날이 있고, 안 되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그 안 되는 날 중 하나였다”면서 “그런 것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게 선수인데, 연이어 나온 실수가 아쉽다”고 설명했다.
전웅태의 오른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멀리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바다의 영물(靈物) 고래와 나침반, 왕관을 새겼다. 늘 이 문신을 보며 의지를 다진다고 한다. 그는 “계속 근대5종을 할 것”이라며 “더 나은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역도, 클라이밍, 골프, 배드민턴 등에서도 투혼
중학교 2학년 때 장미란(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보고 역도 꿈을 키운 김수현(29)은 이날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역도 81㎏급 경기에서 합계 250kg(인상 110kg, 용상 140kg)을 들어 13명 중 6위를 차지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노 리프트(실패)’ 판정으로 실격 처리라는 불운을 겪은 김수현은 칠전팔기 정신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지만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는 아직 미완으로 남겨두게 됐다.
한국 여자 스포츠클라이밍의 선각자 서채현(21)은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볼더링+리드) 결선에서 8명 가운데 합계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 종목에서 서채현은 당시 ‘경험 부족’으로 꼴찌를 했다. 3년 동안 무섭게 성장해 ‘첫’ 올림픽 메달을 노렸지만 ‘등정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 골프의 ‘맏언니’ 양희영(35)은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를 기록해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동메달을 따낸 린시위(중국)와는 불과 1타 차였다. 양희영은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도 동메달리스트 펑산산(중국)에게 1타 뒤진 공동 4위였다. 그는 향후 올림픽 출전 질문에 대해선 “저보다 더 젊고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와서 꼭 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외에도 큰 기대를 받고 파리에 입성했지만,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배드민턴 서승재(27)는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을 연거푸 소화하는 ‘강철 체력’을 과시했지만, 아쉽게 시상대에 오르진 못했다. 수영 황선우(21)도 세계라는 ‘물’에서 역영을 펼쳤으나, 주종목인 자유형 200m는 물론 계영에서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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