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과 ‘두 국가론’은 어떨까? [정욱식 칼럼]
가장 가깝지만 가장 적대적인 현실 직시해야
한국을 이롭게 하면서 남북관계에도 도움 되는 길은 없을까
냉정하게 보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인 2019년 8월〜2022년 5월에 남북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러한 평가 속에는 남북관계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지만, 되살림의 토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들어 상호간의 적대성이 나날이 심해지면서 다리마저 무너졌다. 이전에 존재했던 남북관계의 토대가 유실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수치도 있다. 우선 1971년 공식적인 남북회담이 시작된 이래 매일매일 회담 단절의 기록이 갱신되고 있다. 2018년 12월 체육회담을 끝으로 현재까지 남북회담이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보면 현재까진 문재인 정부가 대화 단절 29개월로 최장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7월까지 26개월을 기록한 윤석열 정부가 이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높다. 참고로 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행정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한 차례의 대화도 없이 임기를 마칠 공산이 매우 크다.
대화만 단절된 것이 아니다. 2019 년부터 현재까지 남북 간 선박·항공기·철도 왕래는 0이다. 2021년부턴 사람도 차량도 왕래가 완전히 끊겼다. 1989년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이다. 이산가족 생존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남북의 정서적 유대도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제로’는 아니다. 인도적·협력적 왕래가 끊긴 자리엔 대북 전단 풍선과 대남 쓰레기 풍선이 오가고 있고 시끄러운 대북 확성기 방송이 고요한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북으로 향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조선의 적대성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남북관계는 1990년을 전후한 미·소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적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체의 대화와 교류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주적’ 이라고 부르고 ‘건들기만 해봐라’며 으르렁거린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정치군사적으로는 가장 적대적인 현실이야말로 한반도 구성원들에겐 가장 큰 불행이다. 근접성과 적대성은 2024년 들어 한반도 주민들의 불쾌지수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양측의 풍선 살포와 확성기 방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깝기에 풍선에 전단이나 쓰레기를 넣어 상대에게 보내거나 비방 방송을 하는 것이 수월하다. 또 적대적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오늘날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구체제 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반면에 ‘신체제’ 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구체제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부터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합의들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이들 합의가 위태로운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늘날만큼이나 그 토대가 무너진 적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되살릴 수 있는 여건이 유실된 적은 없다.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 특수론’ 이 사실상 파탄난 것이다.
그럼 ‘신체제’는 무엇일까? 아직은 모르지만,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조선은 1991년 8월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국제법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족과 통일 담론이 너무나도 강렬했고 적대성을 청산하지 못한 나머지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고착되었다’며 민족과 통일 지우기에 나서고,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민족·반통일’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유의 북진”과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의 통일을 더 강하게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 혼란과 위기의 본질은 이 지점에 있다. 구체제 해체에 나선 김정은 정권은 적대성을 강화하는 신체제를 도모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구체제의 적대성을 더욱 강하게 부여잡고 있다.
한국이 구체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2월에 한국이 쿠바와 수교하면서 상당수 언론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미수교국은 이제 시리아만 남게 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건 오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미수교국은 시리아뿐만 아니라 조선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선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장내 아나운서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로 표현했다. 그러자 국내 언론은 대한민국을 ‘북한’으로 잘못 불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러한 보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주최 측이 큰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잘못 호명된 국호는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익숙해진 나머지 국제법적으로 하나의 국가인 ‘조선’을 없는 존재처럼 여기기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한다.
나는 앞서 남북관계를 연결했던 유무형의 다리가 무너졌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이대로 살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북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사라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땅과 강과 바다와 하늘을 맞대고 있어 동물들이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고, 큰 비가 와도 큰 가뭄이 들어도 ‘물 문제’ 가 생길 수 있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비무장지대가 많은 양의 전단·오물과 지뢰 , 그리고 소음으로 덮이면서 각종 생명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북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지정학적 단층을 맞대고 있다. 그래서 지정학적 단층운동이 강해지면 지진, 즉 큰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반도이다. 완전히 등을 돌리고 살기에는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고 지정학적으로도 너무 예민한 곳에 있다는 뜻이다. 상대가 싫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어딘가로 옮길 수도 없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무너진 다리를 복구하는 데에 방점을 찍을지, 아예 새로운 다리를 놓는 데에 방점을 찍을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나의 생각은 후자로 기운다. 구체제를 복원하는 것보단 신체제를 도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 출발점은 ‘탈북한’에 있다. 이 표현은 올봄에 계간 <황해문화>로부터 ‘폭망한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새로운 화두를 던져달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떠올린 것이다. 탈북한은 ‘우리 안의 북한’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상대하자는 뜻이다. 남북관계와 국제적인 차원에선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내려놓고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 간 관계를 도모해보자는 것이다. 특수관계론에 입각한 여러 합의와 규범이 무너진 자리에 유엔 헌장을 비롯해 한국과 조선이 인정한 국제규범을 세워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 달라질 수 있는 게 있고 달라질 미래를 도모할 수도 있다. 우선 국제 스포츠 무대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 기자가 조선 선수단을 ‘북한’이나 ‘북측’으로 표현하면 조선 관계자들이 이에 항의하고 기자회견장에 냉기가 흐르는 일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반면 한국 언론이 ‘조선’이라고 부르면 조선 선수단이 답변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져 기자회견장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질 수 있다.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곤 한국과 조선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사라진 현실이기에 이러한 변화가 품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양측의 풍선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국제규범을 떠올려보면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국제규범과 별개로 이러한 행위들은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 동시에 적대성과 남북 특수관계론이 강하게 투영된 이러한 행위들은 유엔 헌장을 비롯해 유엔의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과 국제민간항공협약 (ICAO), 그리고 생물다양성협약 등에 저촉된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조선은 이들 국제규범에 모두 가입해 있다. 기존의 남북관계가 무너진 만큼, 공존과 분쟁 예방의 기초를 국제규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탈북한’이 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에게 이로운 일조차 ‘북한 때문에’, 혹은 ‘이적행위’라는 틀에 가둬놓고 논의조차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반해 ‘우리 안의 북한’을 내려놓고 조선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 조선은 유엔 회원국인데, 한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을 법률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보편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이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물론이고 미국 국무부조차도 이렇게 권고해왔다. 이러한 주장이 국가안보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특칭할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라도 한국의 주권과 안보를 침해할 경우 법적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국가보안법을 바꾸면 된다. 대다수 국가들은 이렇게 하고 있다.
또 우리는 남북 특수관계론에 너무나도 많은 국가적·사회적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특수관계론의 폭력적인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대표적이다. 이를 배제하면 복합·다중 위기에 처한 한국을 혁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국방비 감축을 통한 민생 재원 증액, 병력 감축형 모병제 도입을 통한 불평등·젠더 갈등·저출산·노동가능인구 급감 등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에 관한 대안적인 논의의 활성화,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를 통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온실가스 감축 등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주권·영토의 통합성·정치적 독립의 존중’을 핵심으로 하는 유엔 헌장과 맞지 않는다. 조선이 내세우고 있는 ‘전시 무력편입론’ 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인 한국과 조선이 유엔 헌장에 부합하는 형태로 군사전략을 개정하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두 국가론’에 입각한 남북관계의 변화는 한반도 핵문제 해법에도 새로운 접근을 가능케 한다. ‘비핵화’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어온 한반도와는 달리 국제사회에선 ‘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 가 보편적으로 통용되어왔다. 비핵지대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유엔의 지지와 협력을 받아 지대 내에 있는 국가들이 조약 체결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하고 국제적으로 보장받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국과 조선이 한반도 지내 내 국가로서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5대 핵보유국들로부터 핵무기 불사용 및 불위협, 그리고 핵무기 배치 금지를 국제법적으로 보장받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이처럼 ‘탈북한’과 ‘두 국가론’은 많은 논의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적대성을 조금씩 완화해가면서 무력 충돌의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고, ‘북한’을 향한 유무형의 자원 낭비를 줄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하고 보편적 가치에도 기여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도 이롭게 할 수 있는 ‘이기이관 (利己利關)’의 접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통일과 반드시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으론 유럽연합과 흡사한 국가연합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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